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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9.2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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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 12절에서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3단계의 실존주의를 말한다. 첫 단계는 미적 실존이며, 둘째 단계가 윤리적 실존이고, 최종 단계가 기독교적 실존이다. 키르케고르는 미적 실존 단계와 윤리적 실존 단계에서는 절대자와의 관계에서 자기 발견은 불가능하지만, 오로지 기독교적인 실존주의 단계에서만 절대자 앞에서 자기부정을 통해서, 실존적인 도약으로 역설적으로 자아 발견이 가능하다고 한다. 영원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영원한 자기 ‘생명’의 발견이 가능함을 감동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미적 실존주의의 절망은 인생의 모든 괘락을 향락하려는 태도이다. 유미주의자는 본질적으로 감정에 휘몰린 자로서 영적인 방향감각이 없는 자이다. 영화 같은 경험을 원하면서 참된 삶에 참여하지 않는다. 마약을 즐기는 것처럼 삶을 불태워 버린다. 향락주의자는 외면적 쾌락의 노예가 된 생활을 하는 자로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향락에 사로잡혀 노예상태에서 본래의 자기를 상실한 자이다. 미적 실존의 아이러니이다.

 

향락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서 양심의 입장에서 자기 발견하려는 것이 윤리적 실존의 단계의 절망이다. 윤리적 실존은 착한 시민으로 참여하여 도덕적 책임을 다하며 결혼생활을 양심에 어긋남 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려 한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처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로마서 7장 19절)라고 고백하게 된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자아 발견을 위한 최종 단계로 기독교적 실존이 요청됨을 말한다. 인간은 자기를 부정해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전 자아를 내어던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 능력, 가능성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계의 극한상황에 도달했을 때, 절망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장 31절)를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서 인간은, 전능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자신을 포기하고, 무의 상태에서, 무한한 미지의 세계의 어둠의 심연 속으로 전능자를 향해 실존적인 도약을 해야 한다. 실존적인 도약은 죽음으로서 사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이러한 종교적 체험을 “절망은 주검에 이르는 병이면서 주검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요한복음 11장 4절)고 함으로서, 삶으로의 도약임을 말하고 있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아브라함은 마음의 격심한 갈등 끝에 나이 백 살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인간적인 가정의 재미를 말하는 미적 실존의 단계와 아들을 살해한다는 윤리적 실존 단계를 넘어 그리고 자식을 하나님보다 사랑함으로써 우상화하는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특유한 ‘키르케고르적인 도약’이 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와 같은 자손의 복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부정을 통한 긍정이요, 키르케고르의 ‘좌절에 의한 비약’이었다.

 

창세기 26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실존적 도약의 축복이 후손에게까지 이름을 본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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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5] 키르케고르의 3단계 실존주의 - 쇠렌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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