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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8.2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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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0시를 기준으로 전 세계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는 약 1,174만 명, 사망자는 54만 명을 넘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의 재확산이 심상치 않다. 여러 나라에서 이미 예를 갖춘 경건한 장례식은 옛일이 되었다. 생명의 허망함과 덧없음이 무겁게 공기를 짓누른다. 지금은 슬픔과 불안과 상실의 시대이다.


기도만 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명령만 하시면 고통이 간단히 사라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것은[코로나바이러스는] 어느 날...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요행을 바라는 것 같다. 순진한 신앙이다. 하지만 성서의 신앙은 맹목적 확신이 아니다. 막연한 기대도 아니다. 한결같은 사랑과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께서 모든 고통과 악 속에서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내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이다.


본문 말씀과 같이 하나의 주술로 오해되는 구절도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서신을 보내면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고 말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바울이 처음 한 말이 아니다. 그리스의 역사가이자 스토아 철학 사상가인 플루타르코스의 말이다. 그가 이 말을 처음 했을 때 그 안에는 기계적 낙관주의가 숨어 있었다.


이 말은 본래 스토아 철학가들이 세상의 악을 설명하려고 고안한 말이다. 즉 세상의 모든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또 개개인의 좋아함이나 싫어함과 상관없이 ‘보편적인 이성’의 작용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는 불행이나 악도 결국은 보편적으로 선한 명분에 봉사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바울이 반대했다. 바울은 만물 속에서 역사하면서 선한 결과를 지향하는 존재는 보편적 이성이라는 우주적 원리도 아니고 운명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는 구절에서 참 주어는 ‘모든 것’(panta)이 아니다. ‘합력하다’(synergei)라는 동사의 주어는 하나님이다.


‘모든 것’은 오히려 목적어이다. 이 구절의 올바른 해석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속에 역사하여 선을 이루어가신다’이다. 세상 사물과 일들이 이렇게 저렇게 서로 조화를 이루어 요행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의 섭리와 의지 속에서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오늘 부른 개회 찬송가 66장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독일 개신교인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 중의 하나인 좥다 감사드리세좦는 유럽의 30년 전쟁(1618~1648) 중에 마르틴 린카르트목사가 기도 시로 작사한 것이다.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워 온 세상 기뻐하네. 예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여기서 말하는 ‘옛날부터 주신 복, 이제와 영원히 선물로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이 바로 구약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 헤세드이다. 이제는 변치 않으시는 주 하나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말로 할 수 없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우리의 소망은 다른 구원이 아니라 오직 주님 안에 있다.  /이화대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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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드 : 하나님의 사랑 - 로마서 8장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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