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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31]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
      창세기 22장 17절에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좥소네트 11좦에서 젊고 아름다울 때 자녀를 많이 가지라고 권면한다. 둘째 연(5~8행)에서, 시인은 “그들 자녀들에게는 지혜와 미와 번영이 있게 되지만,/자녀가 없는 곳에는 어리석음과 노령과 죽음만이 있게 되오./모두가 그대같이 맘먹는 날이면, 세상은 끝나게 되리,/살아봐야 인간 생명의 길이가 되는 60년만 지나면 말이오”라고 함으로써 젊은이가 자식 없이 대가 끊어진 것을 탄식하고 있다.   다섯째 행에서 시인은 자식을 가지게 되면, 그 자식들에게는 지혜, 아름다움, 번영이 있음으로, 그들의 부모도 그 모든 것을 함께 누리며 영관을 갖게 된다고 한다. 야곱은 아들 유다에게 예언적인 축복을 하면서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기 49장 10절)라고 했다. 위대한 축복은 ‘실로’ 즉 메시야에 대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섯째 행에서는 그대가 청춘일 때,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미련하고 개을러서, 주인이(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생산의 능력)를 사용하지 않고, 자녀가 없는 날에는, 그대는 그 어리석은 생각의 결과, 나이가 많아져서, 육체는 시들고, 돌보아 줄 자식도 없이 외로운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일곱째 행과 여덟째 행에서, 시인은 모든 인간들이 그대처럼 개으르고, 자식을 갖지 않겠다고 한다면,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사랑, 긍휼, 친절, 아름다움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며, 인간이 살아봐야 기껏 60여 년 밖에 못사는데, 그렇게 되면 세상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고 냉소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   셋째 연(9~12행)에서, 시인은 “자연이 예비 된 아름다운 자녀들로 채우도록 창조되지 않는 자들은/사납고, 추하고, 잔인하고, 자식 없이 죽는 것이 낫소./자연이 혜택을 많이 준 자에게는 더 많이 줄 것이오./그대는,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 그대의 선물을 더 받으세요”라고 훈계하고 있다.   아홉째 행과 열 번째 행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자연의 원리는 인간이 아름답고 지혜로운 자녀들로 후손을 이어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장 28절)고 하셨기 때문에, 자녀를 가져야 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떤 이유로든 자녀들을 갖지 않게 되는 자들은 ‘추하고, 잔인하고, 자식 없이 죽는 것’이 낫다고 저주의 말을 했다. 마치 주인이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저주했듯이.   열한째 행과 열두째 행에서, 하나님은 자녀를 많이 가져서 하나님이 주신 혜택을 누리는 자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리도록 할 것이며, 자녀들을 많이 가졌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더 많이 받게 되리라고 축복하고 있다.    열셋째 행과 열넷째 행의 맺는말에서, 시인은 “자연이 그대를 자기의 인장으로 새겨놓은 뜻은/그대를 원판 삼아 많은 복사를 남겨놓게 하려는 것이오.”라고 했다. 시인은 하나님은 뜻이 계셔서 그대를 자녀를 생산하여 대를 이어나가게 하는 아름다운 모델로 창조하였기에, 그대가 더 많이 아름다운 자녀들을 창조하여, 아름다운 이상이 역사의 흐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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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7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9] 육체적 위안보다 영적인 위안을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좥소네트 146좦의 둘째 연(5~8행)에서 시인은 “그렇게도 짧은 임대 기간을 갖고서, 그렇게도 많은 비용을/그대는 그대의 사라져가는 저택에 쏟아 붓는가?/이 사치스런 낭비의 상속자인 벌레들로 하여금/그대가 투자한 것을 먹게 하려는가? 이것이 그대 육체의 종말인가?”라고 읊었다. 다섯째 행과 여섯째 행에서 ‘짧은 임대 기간’이라고 하고 사라져버릴 ‘저택’이라고 함으로써, 육체는 영혼을 수용해주는 저택에 비유하고, 그 저택은, 영혼이 떠나가면, 사라져버릴 단명한 셋집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시인은 사라져버릴 셋집에 그렇게 많은 비용을 쏟아 붓는 어리석음을 보이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곱째 행과 여덟째 행에서, 시인은 ‘사치스런 낭비의 상속자인 벌레’는 육체가 죽는 날에, 육체는 땅에 묻히게 되어 썩어지고, 육체를 즐기는 것은 구더기뿐이라고 한다. 결국 구더기의 밥이 되어 무로 돌아가 버리는 육체를 위해서 그렇게도 요란스럽게 단장하고, 화장품 칠하고, 화려한 옷으로 외형을 꾸밀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헛된 삶을 영위하는 것이 그대 육체의 종말인가 질문하는 것은, 종말에 직면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하게 한다. 결국 종말에 가라지로 심판을 받게 되면, 풀무 불이 타오르고, 꺼지지 않는 불속에서, 울며 이를 가는 지옥(마 13:24-30, 36-43)에 가려는가를 묻고 있다. 셋째 연(9~12행)에서, 시인은 “그렇다면 영혼이여, 너의 종(육체)의 멸망을 딛고 네가 살아라./그리고 너의 종을 굶주리게 하여 그대 영혼의 풍요를 증강시켜라./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을 팔아서 영원한 생명을 사들여라./내부세계를 살찌게 하고, 외부세계를 부하게 하지 말지라.”고 충고한다. 아홉째 행과 열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를 ‘너의 종’이라고 함으로써, 종은 주인을 섬기는 천한 신분이며, 중요한 것은 영혼이 살아야 한다고 한다. 육체를 희생시키고 영혼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라고 충고한다. 열한 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의 삶을 ‘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이라 하고, 영적인 삶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여 시간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도시〉에서, 하늘의 도시(영을 따라 사는 자들이 가는 곳)과, 땅의 도시(육신을 따라 사는 자들이 거하는 곳)을 대조하고 있다. 하늘의 도시를 영원 세계라 하고, 땅의 도시를 시간 세계라고 하고서,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에 거하신’(요한복음 1장 14절) 예수는 영원에서 시간 세계로 오신 분으로써 그 분을 통해서만 우리가 영원을 누린다고 했다. 하버드대 교수인 폴 틸리히는 우리가 영원에서부터 시간 속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순간을 ‘영원한 현재’라고 하고, 성육신이라고 했다. 시인은 ‘영원한 현재’를 통해 ‘지상의 쓸모없는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라고 했다. 그리고서 12행에서 시인은 속사람(내부세계)이 영원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하고(살찌게 하고), 겉 사람(외부세계)이 세상과 더불어 향락하다가 죽음의 길로 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시인은 13행과 14행의 맺는말에서 “그렇게 하여 인간을 먹고사는 죽음을 잡아 먹어버려라./죽음은 한 번 죽으면 더 이상 죽지 않는다”라고 선포한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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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세계 명작과 성경의 만남 28] 사로잡힌 자에 대한 탄식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
      갈라디아서 6장 8절에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소네트 146」에서 나의 영혼이 육체적 위안보다 영저인 위안을 누리기를 갈망하는 노래를 읊고 있다. 시인은 첫째 연에서 인간이 육체적 욕망에 사로잡힌 것을 탄식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각 4, 4, 4, 2행의 총 14행의 단시)의 일반적인 경향은 주로 죽음의 변덕스러움과 종말, 젊음과 아름다움의 좌절감, 사랑이 물어 익은 위에 비극적인 가치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은 의로운 자들을 위한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서 진지한 기독교적 신앙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154편의 소네트 중에 가장 중요한 소네트이다.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146」에서 인간의 영혼이, 인간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육체적인 위안에 노력을 기우리지 말고, 인간을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는 영적인 위안을 누리도록 하라고 충고한다. 시인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이분법으로 말하면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일시적으로 지구상에 머무는 육체보다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연에서 시인은 〈나의 죄 많은 육체의 중심인 가련한 영혼이여/그대를 치장해 주고 있는 육체의 욕망의 주인이여/왜 그대는 내부는 파리해지고 굶주림에 욕을 보고/그대의 바깥벽을 그렇게도 호화롭게 단장하는가?〉라고 읊었다.   첫째 행에서 시인은 ‘죄 많은 육체’와 ‘가련한 영혼’이라고 함으로써 인간을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로 기술하고 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다.   시인은 ‘죄 많은 육체’라고 하고 ‘가련한 영혼’이라고 함으로써 아담이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범하여 전적으로 타락함으로써 낙원을 상실한 후 모든 인간은 원죄를 타고난 점을 짚는다. 그 결과 인간은 죄짓기 쉬운 나약한 존재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인간의 중심이며 주인이 되는 영혼은 가련하고 초라한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둘째 행에서 시인은 육체의 주인인 영혼보다 ‘육체의 욕망’을 강조하고 있다. 육적인 욕망은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지한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한 것으로 이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태도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다(요한일서 2장 16절).   3행과 4행에서 내부는 허무와 궁핍에 빠지게 하고, 바깥벽에만 관심을 가지고 호화롭게 단장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린도후서 4장 16절)라고 했다. 우리의 겉 사람은 질그릇이요, 죽을 육체요, 땅에 있는 장막 집이다. 겉 사람이 낡아진다는 것은 늙어지고, 쇠하여 지고, 소모되고, 악화되고, 부패하고, 죽어져서 섞어버리는 것이다.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서 새로 창조함을 받는 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서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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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3
  • 장로문인회, 6개 지역 지회장 임명
    한국장로문인회(회장=오성건장로)는 지난 16일 제6회 가을문학강좌집을 제작해 회원들에게 배포했다. 또한 동회는 6개 지역 지회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동 문인회는 ‘코로나19’사태로 가을문학강좌를 가질 수 없게 됨에 따라 강좌집을 제작했다. 이번 강좌는 김지원시인의 「시창작을 위한 몇가지 제언들」이란 제목으로 ‘좋은 시’에 대한 분석과 창작방향을 제시했다.   동 회 오성건회장은 “코로나 사태로 모임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강좌집’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동 문인회가 임명한 지회장은 다음과 같다. △전남지회장=강병원장로 △경남지회장=신이건장로 △경북지회장=박노황장로 △충남지회장=김형태장로 △충북지회장=한 오장로 △강원지회장=피기춘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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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3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5] 키르케고르의 3단계 실존주의 - 쇠렌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
      창세기 22장 12절에서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3단계의 실존주의를 말한다. 첫 단계는 미적 실존이며, 둘째 단계가 윤리적 실존이고, 최종 단계가 기독교적 실존이다. 키르케고르는 미적 실존 단계와 윤리적 실존 단계에서는 절대자와의 관계에서 자기 발견은 불가능하지만, 오로지 기독교적인 실존주의 단계에서만 절대자 앞에서 자기부정을 통해서, 실존적인 도약으로 역설적으로 자아 발견이 가능하다고 한다. 영원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영원한 자기 ‘생명’의 발견이 가능함을 감동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미적 실존주의의 절망은 인생의 모든 괘락을 향락하려는 태도이다. 유미주의자는 본질적으로 감정에 휘몰린 자로서 영적인 방향감각이 없는 자이다. 영화 같은 경험을 원하면서 참된 삶에 참여하지 않는다. 마약을 즐기는 것처럼 삶을 불태워 버린다. 향락주의자는 외면적 쾌락의 노예가 된 생활을 하는 자로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향락에 사로잡혀 노예상태에서 본래의 자기를 상실한 자이다. 미적 실존의 아이러니이다.   향락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서 양심의 입장에서 자기 발견하려는 것이 윤리적 실존의 단계의 절망이다. 윤리적 실존은 착한 시민으로 참여하여 도덕적 책임을 다하며 결혼생활을 양심에 어긋남 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려 한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처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로마서 7장 19절)라고 고백하게 된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자아 발견을 위한 최종 단계로 기독교적 실존이 요청됨을 말한다. 인간은 자기를 부정해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전 자아를 내어던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 능력, 가능성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계의 극한상황에 도달했을 때, 절망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장 31절)를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서 인간은, 전능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자신을 포기하고, 무의 상태에서, 무한한 미지의 세계의 어둠의 심연 속으로 전능자를 향해 실존적인 도약을 해야 한다. 실존적인 도약은 죽음으로서 사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이러한 종교적 체험을 “절망은 주검에 이르는 병이면서 주검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요한복음 11장 4절)고 함으로서, 삶으로의 도약임을 말하고 있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아브라함은 마음의 격심한 갈등 끝에 나이 백 살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인간적인 가정의 재미를 말하는 미적 실존의 단계와 아들을 살해한다는 윤리적 실존 단계를 넘어 그리고 자식을 하나님보다 사랑함으로써 우상화하는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특유한 ‘키르케고르적인 도약’이 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와 같은 자손의 복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부정을 통한 긍정이요, 키르케고르의 ‘좌절에 의한 비약’이었다.   창세기 26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실존적 도약의 축복이 후손에게까지 이름을 본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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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5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3] 니체의 반기독교 사상과 여성의 역할 -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야고보서 3장 14~15절에서 “……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라고 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1844~1900)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기독교를 노예들의 도덕이라고 거부할 뿐 아니라, 제1부 18에서 여자의 존재 목적은 초인을 낳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열을 올렸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 제3부 12에서 좥낡은 목록표와 새로운 목록표에 대하여좦에서 낡아빠진 독단적인 강좌와 낡아빠진 자만이 도사리고 있는 기독교의 모든 것을 뒤집어엎으라고 명령하고, 기독교의 위대한 스승들, 성자들, 구원자들을 비웃으라고 명령한다. 이제까지 모든 인식은 죄의식 옆에서 성장해 왔는데, 그것을 부숴버리라고 한다. 유일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모든 나무들 중 가장 나쁜 나무인 십자가가 자라는 곳이며, 그런 땅에는 찬양할 것이 없다는 것이고,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니체에게 삶에 대한 최고의 의지는 존재를 위한 비참한 투쟁이 아니라, 살기 위하여 죽이려는 의지, 즉 권력에의 의지, 제압하려는 의지, 전쟁에의 의지라고 선포한다. 스파르타식 군사적 공격성향의 사상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 니체의 철학은 파괴하려는 힘이 삶의 최고의 목표인 것이다. 니체의 영웅 숭배 사상은 독일의 히틀러의 나치사상과 비교된다. 니체의 초인은 창조자가 아니라, 파괴자이다. 이것은 노예들의 도덕에 반대한 주인들의 도덕이란 것이다. 노예들은 주인들로 인해 착취당하기 위해 살아야만 한다. 초인이 생존하기 위해 대중이 소멸되어야 한다. 모든 역사는 무자비한 힘을 통해 승리에의 의지로 인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에게 사려있게 하지 말라”라고 한다. “옛 도덕을 파괴하고, 새로운 부도덕을 확립하라”고 한다. 야심, 무자비함, 증오, 이것들이 주인 계급의 힘이요, 동정심, 관대함, 사랑, 이것들은 노예계급의 약함이란 것이다. 나폴레옹 같은 공격자가 니체의 초인이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기독교적인 민주주의는 너무 늦기 전에 파괴해야만 한다. 기독교적인 사랑은 노예의 교리란 것이다. 니체는 여자의 존재 목적은 초인 생산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니체는 좥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좦에서 “여자에 관한 것은 모두가 수수께끼이다. 여자에 관한 모든 것은 하나의 해답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임신이란 것이다.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원하는데, 그것은 위험과 유희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남자는 가장 위험한 장난감으로서 여자를 원한다. 남자는 전쟁을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하며, 여자는 전사의 휴식을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어리석은 짓이다”고 했다.니체는 “여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한 세계의 여러 가지 빛을 받아, 반짝이는 보석처럼 청순하고, 우아한 장난감이어야 한다. 별빛이 그대들의 사랑 속에서 반짝이게 하라. ‘나는 초인을 낳고 싶다’가 그대들의 희망이 되게 하라”라고 한다. 니체는 1888년 말부터 정신 착란의 징후가 나타났으며, 이탈리아의 토리노 광장에서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이틀 후에 깨어났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마구 노래하고, 춤을 추고. 거리를 헤매면서 사람들에게 “나는 신이다”고 했다. 니체가 죽을 때는 그의 누이동생 엘리자베스만이 가까이 있었다. 야고보서 3장 17절에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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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1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2] 신의 죽음과 초인의 탄생 -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고 하고,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야고보서 3장 15절)라 했다.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다고 했다(로마서 1장 2절).   독일의 철학자 니체(1844~1900)는 그의 대표작 철학적 소설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고 인간의 의지를 구사한 초인을 창조함으로써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람들을 사로잡으려 했다.   니체는 자신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을 위해서 예수님 탄생 5세기 이전에 죽은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를 대변자로 이용하였다. 차라투스트라는 선악의 갈등에서, 선이 우세하리란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니체는 세계를 선악의 갈등을 넘어 혼란한 장소로 보았다. 차라투스트라는 그의 우주적인 사랑 가운데 인류를 포용하는데, 니체는 그의 우주적인 증오심 가운데 인류를 침몰시켜버린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3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선포하고(〈즐거운 학문〉에서 신의 죽음을 먼저 선포함, 1882), 그 대신에 ‘초인’을 창조한다. 차라투스트라 변신하여 영원을 품고, 최고의 권력에로의 의지를 확신한다. 이런 영감으로 차라투스트라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오 인간이여, 주의하라!/깊은 밤이 무엇을 선포하는가?/“나는 깊은 꿈으로부터 일어나서 선서하노라/세계는 깊이 잠들어있다,/낮이 아는 것보다 더 깊이 잠들어있다./그 비통함은 깊도다./기쁨-고통보다 더 깊도다./고통이 간청한다 : 물러가라!/그러나 모든 기쁨은 영원을 원한다./깊은 영원을 원하고 또 원한다” 니체는 지상의 비통함은 물러가고, 초인으로 인한 기쁨의 때가 올 것임을 노래한다.   초인의 상징은 자제, 자기 수양, 자주적 방향 결정, 자기 극복을 의미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선포한다. “내가 너 인간에게 초인을 가르치마. 인간은 극복할 수 있는 인물이다 …… 모든 존재들은 자신들 넘어 무엇을 창조하려고 했다. 너는 큰 물결의 허름 속에서 인간을 극복하기보다 뒤돌아가기를 원하느냐? 원숭이가 인간에게 무엇이냐?”   니체는 “그대들은 전에는 원숭이였으며, 지금도 인간은 어떤 원숭이보다 더 원숭이인 것이다”라고 하여, 인간은 원숭이에서 인간에 이르는 길을 걸어왔다는 진화론을 주장한다. 인간은 미개한 동물성으로부터 초인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그대들에게 내세의 희망에 대하여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은 독을 뿌리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전에는 신을 모독하는 것이 최대의 모독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모독자들도 또한 죽었다”라고 하였다.    니체는 기독교의 내세의 소망 대신에 초인의 개념을 창조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땅에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초인의 의지를 선포한다. 초인은 의욕과 감사로 지상의 세계를 포용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을 육체와 결부시키고, 영혼을 단순히 육체의 한 모습으로 해석한다.   니체에게 필요한 말씀은 잠언 1장 7절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이다. 니체 같은 ‘천재’가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했기에 ‘미련한 자’가 되고 ‘불쌍한 자’가 되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 출판/문화
    • 문학
    2020-09-01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20] 인간 목적,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림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총론」
      요한계시록 4장 11절에서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고 하셨다. 인간이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영광의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 총론」의 QQ 75-94에서, 모든 물질 속에는 그 물질의 존재 목적인 형태가 내재되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내재론적 목적론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그리고 인간의 최고의 선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창조된 인간은 원래 자연적인 힘에 더하여 최고의 은사로서 최고의 선을 추구하도록 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 소망, 사랑으로서 크리스천들의 미덕이란 것이다.   아퀴나스의 신학철학사상의 중심은 질서, 참여, ‘행위와 잠재’ 이론이다. 우주 전체는 하나의 장대한 ‘질서’이며, 인간은 우주적 질서의 한 부분으로서, 그 질서가 유지되도록 참여하여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인간의 실재 행동의 정도가 우주질서 속에서 인간의 기능과 자리를 결정하며, 인간의 행동은 필연적으로 ‘행위와 잠재’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실재인 ‘행위’ 속에, 보이지 않는 실재인 ‘잠재’된 역사적인 성취가 있다고 한다.   창세기 2장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예언의 말씀이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것은 행위의 차원이지만, 그 예언의 성취는 ‘잠재’의 차원으로, 에덴에서의 추방과 인류 역사를 통해 이어지는 전쟁과 죽음의 역사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하게 되는 역사로 이어진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의 뱀에 대한 심판으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이 예언의 말씀은 ‘행위’ 차원의 것이지만, 그 예언의 ‘잠재’ 차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한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류 구원의 역사의 영광스러운 장이 전개되는 것을 말한다.   가인의 계열을 선악의 나무 계열이라 하고, 아벨과 셋의 계열을 생명나무 계열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말할까? 하와가 가인을 낳고 난후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창세기 4장 1절)라고 하는 ‘행동’ 차원의 말을 하였다. 하와의 ‘내가(I)’ 먼저이고, ‘여호와’는 그 다음이란 것은 인간의 교만을 나타낸다. 하와는 ‘내가(I’”라고 함으로써 자기중심의 교육, 즉 인간 중심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보이는(요한일서 2장 16절) 행동 차원의 교육을 가인에게 한 것이다. 하와의 행동차원의 교육은 역사의 흐름을 따라 후대로 이어지는 잠재차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의 장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하와는 ‘셋’을 낳고 난 후에,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창세기 4장 25절)라고 함으로써, ‘하나님’이 먼저였다. 하와의 하나님 중심의 교육을 셋에게 시킨 행동차원의 교육은 역사의 흐름은 따라 후대로 이어지는 잠재차원은 다윗 왕과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인류구원의 축복의 장이 되고 있다.   시편 1편 1~2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했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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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0-08-13
  • 제16회 창조문예문학상 시상식
      ‘코로나19’사태로 축소해 수상자와 관계자 40여명만 참석     월간 〈창조문예〉(발행인=임만호장로)는 제16회 창조문예문학상과 제7회 창조문예 문예상 시상식, 그리고 신인추천 등단패 수여식을 지난 10일 밀알학교에서 가졌다. 이 시상식은 지난 2월 28일 갖기로 했으나, ‘코로나19’사태로 여러 차례 연기된 가운데 가졌다. 모든 행사규모를 축소해 수상자 등 40여 명만 참석했다.   이날 시상식은 최규창시인의 사회로 진행했다. 창조문예 문인회 회장인 김종수목사의 기도와 권은영시인의 「하나님말씀」 봉독, 임만호발행인의 인사, 이명재문학평론가의 심사평, 제16회 창조문학상 수상자인 오승재소설가와 이정호번역가, 제7회 창조문예 문예상 수상자인 이택민시인에 대한 상패 및 부상 수여식이 있었다. 그리고 신인추천 등단패 및 신인추천 당선패 수여식도 가졌다.   각 부문 시상이 끝난 후에는 허형만시인의 격려사,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인 이광복소설가의 축사, 창조문예 문인회 회장인 김송수시인의 등단자들에 대한 환영사 등 순서로 진행했다.   이명재문학평론가는 심사평에서 “오승재의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2019년)는 제4창작집이다. 역시 표제에 선명하게 나타난 바 기독교신앙에 비중을 둔 소설들이 대부분이다. 원숙한 필체로 진솔하게 쓴 표제작과 더불어 동남아 지역으로 해외선교를 나간 제자에게 자상하게 쓴 「박 교수와 김삼순 선교사」 등이 눈길을 끈다. ‘교인’ 항목의 단편 5편과 「교회에도 수문장이 있다」, 「급매물 교회」를 포함한 ‘목자와 교회’ 항목 등 5편을 합해서 단편은 모두 10편을 실었다. 그리고 이밖에 다양한 콩트 14편을 더하여 구색을 갖추었다”고 밝혔다. 또한 이정호번역가에 대해 “월간 〈창조문예〉 번역 등단작가로서 한영번역 천옥회 시인의 시조 「언덕 위에 쓴 편지」와 이향아 시인의 「저녁 강가에서」 외 「창조문예」에 200여 편을 영역하였으며, 영한번역 영국 신앙시인들의 「영혼의 노래」와 코리치 시인의 「노수부의 노래」를 번역함으로 한국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밝혔다.   한편 임만호발행인은 인사말을 통해 “〈창조문예〉는 기독교정신에 의해 창간되었다”면서, “그렇다고 기독교적인 작품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한국문학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신인추천 등단패와 신인작품상 당선패를 받은 신인은 다음과 같다.   △신인추천=권 현 조정태 이청승 양내인 소흥섭 김만재 한준택 김순규 홍대기 △신인작품상=김창선 박지원 정석영 김동민
    • 출판/문화
    • 문학
    2020-08-12
  • [세계명작과 성경의 만남 18] 영원과 시간 -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시」
      시편 90편 2절에서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은 영원하심을 말씀하고 있다.   기독교 초기의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시>에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는 생성의 세계와 존재의 세계로 분리하는 이원론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도시와 땅의 도시로 분리하는 이원론을 영원과 시간이란 계념으로 정말로 흥미 있게 다루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러기에 하늘과 땅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고, 천지가 창조됨과 동사에 시간도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창조된 세계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세계와 우리 인간들이 사는 시간의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영원으로부터 시간 속으로 보내셨다고 했다. 유한한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만나는 길은 오로지 영원에서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에 거하신”(요한복음 1장 14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서만 임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를 통해 만물을 지으셨으니, 그 가운에 아우구스티누스도 포함되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믿는 자들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갈라디아서 4장 5절) 하셨으니, 그들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도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시간 속에 존재하는 아우구스티누스도 영원에서 시간 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원과 만남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시간도 영원할 수는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리고, 지금 존재하지 않고, 단지 현재의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고 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존재하지 않고 단지 우리의 현재의 기대 속에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현재 지금과 여기 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의 흐름을 시 한 수를 낭독할 때를 예로 들고 있다. 시인이 그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낭송한 구절은 과거 속으로 사라져서 자기 기억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런 시인의 낭송 행위는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시인이 이미 읊은 구절들은 그의 기억 속에, 그가 읊으려고 하는 구절들은 그의 기대 속에 있는 것이다. 마침내 시를 읊는 행위도 끝이 나고, 낭송이라는 행위와 낭송한 시는 모두 기억 속으로 넘어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를 낭송하는 과정은 한 인간의 전체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며, 그리고 한 인간의 삶은 인류 전체 역사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으므로, 인류의 모든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삶도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덧없이 흘러가고, 인류의 역사도 수많은 폭풍과 급류 속에서 흘러가는 강물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인데, 영원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현재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목표, 즉 시간 속에 살면서도 영원함과의 만남으로 완전을 이룩하려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고 한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다. 성육신이야말로 영원과 시간을 연결하는 구원의 영원한 현재인 것이다.   /라이프신학원 총장, 국제크리스천학술원 원장,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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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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