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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 정신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자
      올해는 종교개혁 기념 503주년이 되는 해이다. 종교개혁이란 무엇인가? 종교개혁은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루터는 처음부터 교회의 제도를 개혁하고 교리를 개혁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루터는 신앙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죄인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을까?” 이 고민이 종교개혁의 출발점이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각에선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시대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새로운 기준이나 표준이 생겼다는 뜻이다. 인류는 이 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찾고 있다. 교회도 이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과 혼란을 겪고 있다. 오랫동안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비대면 예배를 드렸다. 비대면 예배를 드리면서 진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가 무엇인가? 예배가 무엇인가? 신앙이 무엇인가?”   루터교에서는 교회를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찬이 바르게 집행되는 교인들의 회중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루터교 예배는 교회의 표지인 말씀과 성례전이라는 두 기둥으로 이루어진다. 코로나로 모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고 성례전을 집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근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예배의 근본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장 1~2절).   종교개혁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 각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특별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공동체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을 때 탐욕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종교개혁이 아닐까?  /루터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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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0-11-19
  •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올해는 참 어수선하기도 하고,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다. 아직도 그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고, 언제 끝날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회를 비롯하여 삶 전체가 위기인 상황에서 맞이하는 2020년 추수감사절.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1. ‘감사’는 기적을 만든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나 남았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알 것이다. 성경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단어들이 있는데, ‘빈들’, ‘날이 저물어’, ‘부족함’ 등이다. 열악한 상황, 희망이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후반부에는 ‘나눔’, ‘배부름’, ‘먹고 남은’, ‘열 두 광주리에 가득 차게’라는 표현들이 나온다. 열악하고 희망이 없는 상황이 풍성하고 모든 것이 넘치는 자리가 되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가.   이 사건의 중심에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라는 기록이 있다. ‘축사’(유카리스테오)는 감사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 감사를 돌린 후에 ‘부족’이 ‘풍요’로, ‘빈들’이 ‘가득함’으로 변하였다. 감사는 기적을 만든다.   2.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추수감사절은 1620년 11월 9일, 메이플라워호를 탄 101명의 사람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 신대륙 미국에 도착하여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에 도착한 그들이 경험한 것은 질병과 추위로 인한 죽음이었다. 그 다음 해에 옥수수와 보리, 밀을 심기 시작해 추수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이 때가 1621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이었고,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날마다 두어 명이 죽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들이었다. 추수감사절은 모든 것이 풍성한 외적인 요인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험한 세상을 살았지만 믿음으로 살았던 이들로 인해 추수감사절은 시작되었다. 올해는 특별히 더 어려운 시기에 추수감사절을 맞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로 능하게 하시고 견디게 하시고 감사하는 삶을 누리는 계절이 되시길 기도드린다. /기감 감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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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0-11-12
  • 상식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자
      현실을 떠나서는 아무도 살 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현실을 바로 파악하면서 살려고 하지만 한계를 느끼기 마련이다. 이러한 한계성을 느끼게 되는 것은 현실이 부단히 그 변수를 지니고 변화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정치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오랫동안 정치는 국민 위에 군림했다. 정치인들의 무한한 권력을 약화하고 국민의 의사를 강화해 정치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작심이 성취된다면 우리 사회는 전진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아무도 독재를 못 한다. 국민이 이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가 사회를 휘두르고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권력의 횡포는 과거의 유물로 치부해야 한다. 힘이 아니라 국민에 의한 정치가 성숙해야 할 것이며, 소수의 견해가 존중되는 정치가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의 민주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에서 특혜는 소멸해야 한다. 소득의 공정한 분배는 인간의 능력에 따라야 하지 인위적으로 조정한다면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다.   언제나 전환기의 문턱은 모두에게 불확실성에서 야기되는 불안을 심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점일수록 냉철한 판단을 요구된다. 우리는 불안을 극소화하려는 노력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사회가 어수선하기가 이를 데 없다. 무수한 공약들이 쏟아지고 선거의 오열로 들끓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결정권을 똑똑하게 행사한다면 정치는 국민을 무서워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대두될 것이다. 이에 맞추어 경제는 자연스럽게 올바른 자본주의 질서를 확립하고 건전한 정치를 의식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민주화를 지향하는 길목에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의 폭넓은 요구를 묵살한다면 반대 여파 역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전환기일수록 눈과 귀를 열고 민주화의 길로 줄달음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전환기는 우리가 현명하게 현실을 안정의 길로 유도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한다.    이것이 민주화의 정착을 보장하는 방책이기도 하다. 민주화란 국민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므로 민주화의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본지 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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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실천
    2020-10-27
  • 가정의 소중함을 간직하자
      우리들의 가정은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단순한 갈등이나 긴장이 아니라 파괴의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할 부부는 서로를 미워하고, 미움의 도가 지나쳐 서로의 삶 자체를 파괴하는 행동까지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부모들은 자녀들에 의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현실 앞에 행복’ 이란 말 자체가 무색할 정도의 상황이다. 심지어 부모들이 자녀에 의해서 살해되고 있다.   그러나 위기의 가정은 치유되어야 하고 행복한 가정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사명이라 할 것이다. 가정 회복, 그것은 부부 관계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 부부야말로 가정의 첫 시작이며, 이들 관계가 회복될 때 가정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두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한다는 통계는 부부 관계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것으로 오늘 현대가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들어 법원은 이혼하는 부부에게 한 달 정도의 심사숙고할 기간을 부여하고 그 기간 동안 부부간의 관계성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권면한다고 한다. 관계성 회복 프로그램은 기독교 단체에서 대부분 진행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처음 사랑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사람이 만나 가장 행복했던 때, 그때를 회복한다면 모든 갈등과 상처는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슴 속에 처음 사랑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 보라. 그 때만큼 순수하고 정열적이며 모든 것을 포용하던 시절이 없을 것이다. 그 시절이 회복된다면 우리의 가정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신앙에서 첫 사랑은 참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품었던 그 사랑, 그때를 기억한다면 우리 신앙은 더 순수해지게 될 것이다. 이런 뜻에서 첫 사랑을 회복하자고 외치는 것이다.   성경은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딤전 5:8)”라고 말한다. 을 맞아 우리의 가정을 행복하게 가꿀 뿐만 아니라, 위기에 처한 가정을 회복하는 사명을 감당하기에 최선을 다하자. /성남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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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1
  • 예배를 갈망하는 성도의 눈물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진 된지 수개월 만에 전 세계를 점령군처럼 지배를 했고, 계속해서 바이러스 확산세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면서 선진국이나 후진국들이 모두 무차별 공략을 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방역당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규제조치를 선포함에 따라, 교회역시 대형교회나 소형교회가 대부분 문을 닫고 온라인 예배로 대치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한편 교회 출석예배를 갈망하는 성도들은 영적으로 심히 갈급한 상태여서 성전예배의 길이 열리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우리교회는 대면예배를 못 드릴 경우에는 온라인 예배를 하지 않고 주보와 설교문 등 예배자료를 각 가정에 우편으로 발송을 해서 각자가 주일과 주중에 대면예배를 드리도록 조치하고 있다.   지난주일 교회 중직자 몇 사람만이 교회에 모여서 오전예배를 드린 후, 오후에 성도들의 가정에 전화로 심방을 했다. 그중에 92세 된 권사님이 전화를 받더니 ‘목사님,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6.25전란 때를 제외하고는 주일 예배를 교회에서 한 번도 못 드린 적이 없었는데 이게 웬 일이지요’라고 하면서 통곡을 하는데 나도 가슴이 너무 아팠다. 최근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수많은 교인들이 물질문명과 세상쾌락에 유혹을 받고 마치 데마처럼 세상을 사랑해서 교회를 떠나고 있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귀한 믿음을 마귀에게 송두리 채 도난당하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영적싸움도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도 이런 질병이 사라지지 않고 팬데믹(pandemic)시대가 지속된다면 교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믿는 자의 수난기인 우리 시대의 특징은 가치관의 혼돈이다. 믿음의 가치를 상실한 이때에 교회는 신앙의 절대적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한다. 예배 없는 성도의 삶은 죽은 신앙이며 예배를 통해서만 신앙을 유지 또는 성숙시킬 수 있고 피조물인 인간이 예배를 통해서만이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와 영성이 회복될 수 있다. /예장 합동선목 전 총회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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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5
  •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란
      “형제들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성경에서 처음 예배드린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삭을 번제(제물)로 드림으로 시작됐다. 이러한 예배는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것으로서 명 설교나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닌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현대 종교인들의 예배는 신전에 가서 드리지만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우리들의 모임이 곧 성전이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 모인 숫자에 관계없이 드리는 예배가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 예배는 어떨까?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을 살리는 영으로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임해서 말씀하셨고, 신약에서는 거듭난 사람의 영 안에 들어가셔서 말씀 하셨다. 생명의 말씀 선포는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의 영 안에 들어가 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온라인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났을까? 온라인에 사람의 영이 존재할까? 온라인으로 하나님의 영이 흘러나올 수도 없고, 학문과 종교, 철학 등으로 혼에 감동이 있더라도 그것은 영 안으로 들어 올 수 없고, 영의 생명없는 고자사역이다. 말씀은 거듭난 영을 통해 상대방 영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기존 종교적 설교는 특정 사람이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은 다 제사장으로 그들 스스로가 매일 지성소에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통해 은혜의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고 나눈다. 그리스도로 인한  승리한 삶을 간증하는 것이 초대교회의 말씀선포였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거듭난 생명을 영이 없는 기계를 통해 말씀하실 수 없다. 이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기계로서 영에 생명을 줄 수 없고 영을 분배할 수 없는 사탄의 사악한 발상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대로 드리려야만 하고, 사람이 만든 도구와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면 죽는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드리다 그 불로 죽었음을 기억하자. 온라인 예배는 사람들의 편리함과 이익을 위해 만들어 낸 결과이다.    /(사)성경원형회복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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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6
  • 예배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예배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 만남이다. 그 만남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신앙고백으로 우리의 죄악을 용서받고, 기도로 우리의 연약을 아뢰고, 주의 종의 복음적 말씀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생명의 메시지를 듣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하고, 각자의 일터에서 소명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해보자. 첫째,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과 더불어(With God’의 예배여야 한다. 즉, 예배는 하나님과 함께 할 때만이 예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모든 순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며, 응답하기도 한다. 둘째,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으로 부터(of God)’의 예배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지 않으셨다면,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인간 자신의 방법으로 예배하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다. 셋째,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Unto God)’이다. 오늘 많은 한국교회 예배들이 매우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헌금을 많이 나오도록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예배하고 있다면 잘못된 예배인 것이다. 예배의 목적이 자신의 위안과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화려한 쑈나 재미있는 개그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청중을 울고, 웃기는 일에 만족을 주고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예배라 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온라인 예배는 처음부터 예배가 아니었고, 그냥 예배장면을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예배는 보는 것도 아니요, 구경하는 것도 아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온전한 헌신으로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당국에서 ‘비대면 예배’를 강요했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고운 새색시처럼 순종만 하고 있다.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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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1
  • 수해민 아픔 보듬는 교회 되자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또 온 나라에 폭우와 홍수의 아픔이 찾아왔다. 이제는 사라진 단어인 줄 알았던 홍수피해, 수재민, 하천범람, 침수, 제방 붕괴라는 단어를 또다시 접하게 되었다. 바다로 변한 도시, 떠내려가는 자동차, 지붕 위에 올라가 어찌할 줄 모르는 소들,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길 등등. 바라보는 마음이 애절하다 못해 아리다. 침수 후 찾아온 폭염 속에서 무너진 집과 사라진 농경지를 바라보며 절망밖에 남은 것이 없다며 눈물 흘리는 수재민들, 무너진 벽과 쓰러진 종탑을 어루만지며 한숨 짓는 피해 교회의 목사님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먼저 홍수 피해를 입고 망연자실하실 전국의 수재민과 교회에게 삼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마저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드리고 싶다. 이제 우리 모두가 해야할 일이 있다. 자연은 우리를 아프게 했지만 그 아픔의 상처를 보듬어 안고 치유해야 하는 일이 오늘 우리 믿음의 성도들과 교회들의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 있다. 첫째는 이번 홍수피해로 인해 아픔을 당한 모든 수재민들과 한국교계 나아가서 우리 한국사회가 이 재난을 이겨내리라는 의지를 가지는 일이다. 희망을 가지는 일이다.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홍수 속에도 하나님은 한가지 희망을 남겨놓으셨다. 바로 무지개이다.   무지개는 희망이다. 무지개는 회복이다. 무지개는 홍수피해를 이겨내리라는 의지와 약속의 징표이다.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이 회복과 치유의 무지개를 품어야 한다. 이번 홍수피해도 극복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자. 나아가서 피해를 입고 한숨짓는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자연재해가 터질 때 마다 우리 사회가 잘하는 것이 있다. 그 피해가 천재냐 인재냐를 가르는 것이다. 그리고 인재라면 그것이 누구 책임이냐를 추궁하는 것이다. 그런 것도 물론 중요하고 필요하다. 평소에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를 게을리하여 피해를 증폭시키고 국민에게 더 큰 아픔을 준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시점에서는 망우보뢰이다. 물론 소를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그러나 일에는 순서가 있다. 지금은 외양간을 고치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 그것은 소를 찾는 일이며 소를 잃은 사람의 아픔을 보듬고 온 교회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일이다.   그런가하면 우리 교인들과 교계가 해야 할 일은 수해 재난민과 교회 지원을 위해 힘을 모으는 일이다. 관심을 모으는 일이다. 이런 대형 재난이 생길 때마다 여러교회에서 현장으로 달려가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정말로 감사하고 격려할 일이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이고 뭉쳐 이번 물 재난을 당한 분들이나 교회에게 큰 힘이 되어주기를 소망해 본다. 몸으로 물질로 돕는 것이 진정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관심과 배려이다.   물론 모든 수해 피해를 우리 교인이나 교계의 힘으로 다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큰 것은 나라나 지방자치 단체가 하더라도 작은 것은 얼마든지 우리가 할 수 있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다. 수재민 돕기 의연금 모금은 물로 능력과 관심을 가진 교회들이 피해를 입은 지역, 수재민, 혹은 교회들과 일대일로 결연을 맺고 그들이 다시 건강하게 삶의 터전위에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안은 찾아보는 것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번 홍수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우리 교계가 따뜻한 사랑의 관심과 배려를 보냈으면 한다. 더 큰 어려움도 이겨낸 우리 민족이다. 관심과 배려로 수재민이나 큰 피해를 입은 교회의 눈물을 닦아주자. 그리고 아무리 큰 홍수라도 그 뒤에는 반드시 무지개가 떠 오름을 잊지 말자. /새길교회 목사, 루터회 전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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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1
  • 민족의 통일과 사명
      기독교는 해방의 종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통해 애굽의 4백 년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었고, 이후 유다 왕 여호야김 11년에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으나 70년 만에 고레스에 의해 2차로 해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과 블레셋, 앗수르, 바사, 헬라, 로마 등 강대국의 압제하에서 고통받을 때마다 특별한 섭리로 해방을 시켜주셨다.   우리는 북에는 이스라엘, 남에는 유다로 갈라진 나라를 남쪽 유다를 통하여 북쪽 이스라엘을 흡수 통일시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남북통일도 대한민국을 통해 북한을 해방시키고 통일시키실 것을 먼저 믿어야 한다.    일제강점 시절 우리 국민은 해방이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와 무수한 폭격, 두 번의 핵 투하로 인해 패망을 맞이한 일본이 미국을 필두로 하는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에 서명하면서 그들의 모진 매질을 맞고 숱한 착취에 시달리며 처절하게 억압받고 있던 우리가 민족의 해방을 맞이하게 된 기적을 체험하지 않았는가.   한반도의 통일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시기에 갑자기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통일을 함께 기도하며 준비할 때 그날이 속히 올 줄로 믿는다. 그러나 통일은 평화의 통일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력으로 남북 간 소중한 생명이 사라지는 비극은 절대적으로 막아야 한다.   이는 비단 동족 상잔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비극을 막는 것일 뿐만 아니라 평화를 희구하며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과 사랑으로 하나 되어 인류애를 나누는 공동체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여호사밧 왕은 나라가 전쟁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때에 하나님은 응답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무력으로라도 통일을 얻고자 하는 북한이 전쟁을 도발하지 않도록 여호사밧처럼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   남북 간 평화의 순풍이 멈추고 있는 지금 동·서 교회가 서로 연합하여 교회끼리 자매결연을 통해 서로의 교회가 교우의 집을 왕래하면서부터 자유를 맛보고 통일의 길을 열었던 독일을 본받아야 한다. 서독의 교회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으로 오늘의 통일 독일을 이루는데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남북의 교회가 교류를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여 통일의 길을 여는 데 앞장서야 한다. 독일의 통일처럼 피 흘림 없는 통일을 한국교회가 열어나갈 때 통일의 날은 속히 다가올 것이다. /예장(합동한신) 전 총회장·목포중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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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2
  • 예배 회복에 힘써야 한다
      코로나 사태이후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하나같이 우려하는 외침이 예배회복이라는 구호이다. 코로나가 단기간에 끝났다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장기화되면서 많은 피해와 부작용과 우려를 낳게 되었다. 더구나 코로나 사태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오래갈지도 모르는게 현실이다. 이러는 사이 한국교회의 예배가 무너진게 사실이다.     회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금의 수준과 과정이 정상수준이 아니라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니까 기준에 못 미친다든지 정상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예배학적으로 여러 가지 이론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예배는 회집예배를 말하고 있으나 여기에 반하여 회집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예배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배는 단순히 찬양 몇 곡 부르고 설교를 들었다고 예배의 기능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회중예배를 구약 성경에서는 물론이고 신약교회의 태동이라 할 수 있는 사도행전적 교회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초대교회는 일단 모이는 교회였음은 분명하다. 물론 장소의 개념은 별개로 하더라도 말이다.    집에서 모이는 소그룹 예배의 모임도 있었지만 이런 소그룹들이 다 함께 모이는 대 그룹의 예배가 있었다는 것이다. 예배는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종합예술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예배가 무너진 이유가 무엇일까? 코로나로 인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는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이미 한국교회 예배는 서서히 무너져 왔다고 본다. 미디어의 발달로 교회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원하는 영적 기호에 따라 접할 수 있는 설교의 홍수시대가 교인들을 교회 밖으로 내 몰았다고 본다. 가뜩이나 이런 추세로 기울어지던 판에 코로나 사태로 회집이 제약을 받게 되고 교회마다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면서 회집예배는 멀어지고 개별예배가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이제는 온라인 예배가 더 자유스럽고 편리하다는 편의주의에 빠져 버리게 되었다.    시간이 장기화되면서 이제는 개별예배의 익숙함에 빠져버렸다. 물론 미디어 시대에 무조건 미디어를 부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미디어를 잘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디어 예배가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성도들이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 교인들과 이 사회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방편임을 강조하여 성도들이 대면예배의 정당성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어차피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될거라고 본다면 철저한 예방수칙과 함께 대면예배 그러니까 교회에 회집하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강조해야 한다. 교인들의 생각의 전환이 없이는 예배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회중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회중예배가 훨씬 은혜롭다는 사실도 확인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온라인 예배와 차별화된 분위기 조성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강력한 기도운동을 통해 성도들의 심령을 채우고 새롭게 하는 일 등. 어느 목사님은 온라인 중계를 모두 중단했다는 말을 들었다. 사태가 많이 안정이 되었음에도 교회 출석을 외면하는 교인들 때문이란다. 그런데 그것 마저 끊으면 다른 교회 채널로 옮겨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 전체가 온라인 중계를 끊지 않는 한. 예배회복 이는 한국교회 전체에게 던져진 숙제이다.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 이 숙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하루 속히 예배가 회복되어 모든 교회가 정상화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뿐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대신측 총회장·수원명성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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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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