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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산나] 코로나는 메시아 재림 예언의 성취 (1)
      오늘의 ‘코로나’는 교회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결정적 장애가 되고 있다. 특히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는 히브리서 10장 25절의 “말씀”과는 정반대의 섭리를 주의-주목하게 된다.    무엇보다 2000년 교회사에 예배를 방해했던 세력들은 어디까지나 사단 그 자체, 또는 사단의 노예인 인간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코로나는 하나님의 직접 섭리이다. 왜냐하면 질병 자체가 인간의 범죄의 결과이고(창 3:17~18),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의 징벌을 “전염병으로 7만 명의 백성이 죽게 하신”(삼하 24:15)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관심은 다윗왕이 하나님 앞에서 백성의 ‘인구 숫자’(삼하 24:1)를 헤아렸다는 것으로 향한다. 그런데 한 나라의 국왕이 자국의 병력 숫자를 점검한 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이스라엘은 여호와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거룩함’(레 11:45)에의 요청 때문이다. 오늘의 코로나는 말세지말의 이스라엘인 교회의 소위 ‘비대면 예배’를 강요당하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교인 머릿수 통계’중단하라는 것이다. 이른바 교회의 물량주의에 대한 경고다.    이에 대하여 계시록 12, 17장은 저 물량주의의 잘못을 “물위에 앉은 큰 음녀”라고 지목, 예언해 주셨다. 이 때에 ‘물’이란 곧장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계 17:1~15참조)고 귀띔해 주신다. 이어서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이 말씀 중에서 1절에 ‘물 위에 앉은 큰 음녀’란 먼저는 중세 및 오늘의 천주교회, 특히 ‘교황청 및 교황’이다. 예컨대 2013년 광복절에 방한한 프랜치스코는 세종로 거리에 30만(필리핀에서는 800만)군중을 운집시켰다. 한편 위 말씀 중 ‘여자의 자주 빛 붉은 빛 옷’은 오늘의 가톨릭의 신부들의 미사 집전 예복을 지목한 예언의 성취다. 물론 옷 색깔 자체의 뜻보다는 중세로부터 오늘까지의 가톨릭이 과시하는 종교 및 세속적 권위, 특히 위에 말한 교황의 ‘물위에 앉은 음녀’로서의 빗나간 교회(corrupted church)의 저것을 지목-예언하심이다. 물론 이 같은 교회풍토에서 위에서 예를 든 개신교가 제외가 될 수 있을까?    이에 알 것은, 신구약 66권의 말씀을 직접 계시 받은 선지자들은 절대로 예외가 없을 만큼 ‘물-군중’과 극과 극의 ‘광야에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즉 모세가 누리고 있었던 당시의 온 세계를 호령하는 바로 왕궁의 저것은 오늘의 대통령, 국가 원수가 정도가 아닌, 저 솔로몬 왕의 영화와 비견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저것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미디안 광야’로 돌진했다. 이것이 없는 선민 이스라엘의 탄생 자체는 상상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모세가 십계명을 계시 받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군중-물’로부터 철저히 차단시키고 있었다. 특히 저 모세의 ‘광야’의 절정은 홍해를 건넌 직후 ‘신 광야’에서였다. 이 같은 예언자-선지자로서의 특권인 ‘광야’의 선결 조건은 엘리야도, 다니엘도, 세례 요한도, 사도 바울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예수 메시아께서 친히 저 ‘광야’의 극치를 보여주셨다는 사실이다. 십자가 위에 메시아께서는 동족-군중들에게 완전히 버림받았는가 하면, 하나님께 마저 버림받고 있었다. 물론 이는 인류 역사상 절대로 재연될 수 없는 모순(contradictory)이자 역설(Paradox)이다. 왜냐하면 신구약 성경의 예수 메시아께서는 곧장 유일절의 여호와 하나님과 본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지 말 것은 예수 메시야의 저 ‘광야에의 고독의 극치’가 인류를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 자체였다는 것이다. /기성측 은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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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1
  • 종교인 세금에 관한 모든 것(1)
      문 1. 교회 등 공익법인인 출연(기부)받은 재산을 매각하는 경우에는 매각금액을 매각한 날이 속하는 사업연도의 종료일로부터 1년내 30%, 2년내 60%, 3년내 90% 상당하는 금액 이상을 직접 공익목적에 사용하여야 합니까? 답) 매각대금은 직접 공익목적에 사용하여야 합니다. 사업연도 종료일부터 1년내 30% 이상 미달사용시 미달사용 비율만큼 가산세, 2년내 60%이상 미달사용시 미달사용 비율만큼 가산세, 3년내 90%이상 미달사용시 미달사용 비율만큼 증여세가 부가됩니다. 문 2. 교회가 정기예금을 하였다. 이자소득세 환급절차를 알려주세요. (영리사업 없이 비영리사업인 종교단체일 경우) 답) 교회의 이자소득은 예를들면 201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교회가 정기 예금한 은행으로부터 「원천징수영수증」을 발급받아 2020년 3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법인세 신고를 관할세무서에 제출하여 이자소득세를 환급받는다. 환급받은 이자소득세는 3년 이내 종교 고유목적사업에 사용하고 지출영수증을 발급받고 세무서에 신고 제출한다. 경기도 모 교회는 정기예금 이자소득세 약 3천만원을 환급 대행하고 있다. 울산, 포항, 대구, 전주, 대전, 속초, 인천, 서울의 교회의 이자소득세 환급 신고를 하였다. 문 3. 교회의 부동산을 3년간 교회의 교육관으로 사용한 후에 타인에게 임대하였다. 교회에 취득세가 과세됩니까? 해마다 재산세는 비과세 됩니까? 답) 교회의 교육관으로 3년간 사용하였다면 교회에서 취득시 감면받은 취득세는 추징되지 않으며 타인에 임대한때부터 해마다 재산세가 과세됩니다. 문 4. 교회의 경외에 교인 및 교회용 무상 주차장을 설치하여 운영합니다. 교회로 직선거리 300m 이내에 설치한 주차장과 도보거리(골목거리) 600m이내 설치한 교회의 무상 주차장은 취득세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가 비과세 됩니까? 답) 교회의 차량, 교인들의 예배참석차량, 인근주민에 무상주차하는 차량의 주차장은 취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가 비과세 됩니다. 문 5. 교회의 교인수송용 차량과 담임목사의 선교용 차량에 대하여 자동차 취득세, 자동차세가 비과세 됩니까? 답) 교회의 모든 차량은 과세됩니다. 문 6. 교회로부터 인접된 토지의 담장을 철거하고 1구내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경우에 취득세가 과세됩니까? 답) 교회로부터 직선거리 300m이내와 골목거리 600m이내 소재하는 교회의 무료주차장은 취득세와 재산세가 비과세 됩니다. 문 7. 교회 담임목사의 종교용 주택을 2년간 종교용에 직접 사용한 후 제 3자에게 임대하고 새로이 취득한 주택은 취득세가 과세됩니까? 답) 2년간 종교용 담임목사의 주택은 취득세 추징 과세됩니다. 문 8. 은혜교회는 유치원을 건축하고 원아들에게 유치원 교육비를 받고 운영합니다. 주일에는 교회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무상으로 교육하고 예배드립니다. 취득세와 재산세가 비과세 됩니까? 답) 유치원은 종교고유목적사업이 아니므로 취득세, 재산세가 과세됩니다. 문 9. 교회가 불우노인 복지사업을 하기 위하여 교회 직원회의 결의로 유료 양로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취득세, 재산세와 양도시 법인세가 비과세 됩니까? 답) 교회에서 불우노인 복지사업을 위하여 유료 양로원을 운영할 때 취득세, 재산세, 양도시 법인세가 과세됩니다. /세무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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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1
  • [건강교실] 현기증 (3)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약 의존이 증가할 수 있어 장기간의 사용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고, 이 외에도 넘어져서 고관절 골절이나 교통사고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도 있어 주의를 요한다. 특히 작용시간이 긴 약제는 현훈에 효과적이지 못하며 벤조디아제핀 계열에 과민증의 기왕력이 있거나, 치료되지 않은 녹내장, 중증 근무력증, 간·신기능장애자, 그리고 임산부와 수유부에는 금기이며 호흡기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주의를 요한다.   항콜린제제는 무스카린성 수용체에 작용하며 움직임에 대한 내성을 증대시킨다. 또한 전정기능의 보상작용에 영향을 미치며 최후영역과 망상체에 있는 무스카린 수용체에 아세틸 콜린과 경쟁적으로 작용해 항콜린작용을 나타낸다. 특히 항 콜린제제는 중추기전이 중요하므로 뇌 혈관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항콜린제는 멀미에 효과가 없고, 증상이 시작된 후 투여하여도 효과가 없다. 이 성분을 포함한 약제로는 스코폴라민과 아트로핀이 있는데 과거에는 경구적 투여가 시도되었으나 입마름, 졸림 등의 부작용이 심해서 요즘에는 경피 패치를 통하여 귀에 부착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약제는 시간당 5㎎씩 흡수되며 3일 이상 지속적으로 혈중농도가 유지되므로 멀미의 예방에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투여 후 4~8시간이 지나야 적정 혈중농도에 도달되며 순수한 항콜린제제는 증상이 생긴 후에 투여하면 효과가 없으므로 짧은 현훈증에는 유용하지 못하다.   중추적으로 작용하는 항히스타민제제는 대부분 항콜린 작용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멀미를 예방하고 일단 증상이 생긴 다음에도 정도를 완화하는 효과를 갖고 있으며, 현훈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여러 종류의 항히스타민 수용체가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H2 수용체가 주로 관여하며, H1 수용체 차단제는 현훈을 막는 데는 관여하지 않고 오히려 H3 수용체 효현제가 H2 수용체 차단제와 같은 결과를 보이며 또한 대부분의 항 히스타민제제는 칼슘 채널 차단 효과 같이 갖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속하는 약제로 메클리진, 시클리진, 디멘히드리네이트 등이 있다.   메클리진은 화학 수용체 발통대를 억제하여 중추성 항콜린작용을 나타내며 중이 미로의 흥분성을 억제하고 중이 전정기관-소뇌 전달 체계의 신경전도를 억제한다. 임상적으로는 멀미의 예방 및 치료, 전정기관의 이상에 의한 현훈 치료에 사용된다. 효과 발현시간은 경구 투여 시 1시간 이내이며 작용시간이 길어 8~24시간 지속된다. 현훈시 복용 용량 1일 25~100㎎을 경구로 분할 투여하며, 멀미의 경우는 12.5~25㎎을 여행 1시간 전 투여한 후 12~24시간마다 반복 투여하고, 필요시 50㎎까지 증량이 가능하다. 또한 태아 기형에 대한 위험이 낮아 임신 중 어지러움에 1차 약제로 사용된다. 하지만 1~2주간 치료하여도 현훈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투약을 중단하는 것이 좋다.   흔한 부작용으로는 중추신경계에서는 경증도의 졸음, 그리고 호흡기 계통에서는 기관지 점액의 분비 증가가 있으며, 빈도는 낮지만 관절통과 식욕 증가, 체중증가, 오심, 설사, 복통, 구갈 등의 위장관계증상과, 그 외에도 두통, 피로, 신경과민이 생길 수 있다. 본 약물에 과민성이 있는 경우나 임신한 경우는 금기이며, 협우각 녹내장, 전립성 비대증, 유문-십이지장 폐쇄, 방광경 부 폐색의 경우에는 주의해서 사용해야 하고 특히 기온이 높은 날이나 운동 중 사용 시 주의해야 한다.   디멘히드리네이트는 오심, 구토, 멀미와 관계된 현기증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우선적으로 사용되며 메니에르병에 대한 치료를 위해서도 사용된다.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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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1
  • 시인 최 선박사의 행복칼럼-35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크고 작은 짐을 결코 벗어나 살아갈 수 없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인간의 눈에 결코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행복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사람은 삶의 현장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행복의 지수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 선택한 것 중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세월이다. 어릴 때는 시간이 빨리 가지 않는다고 느낀다. 아마 한번쯤은 나는 언제 어른이 되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그 시간을 잡고 싶을 정도로 빨리 날아간다. 30대는 30km, 40대는 40km, 50대는 50km, 그 이상의 시간은 더 빠르게 달려간다.   사람들이 제각기 다양하게 살아갈 때, 한 시간, 하루, 한 달, 일 년, 10년 그 보다 더 많은 시간의 세월 속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삶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행복과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간을 아끼며 주어진 세월 속에서 어떤이 와의 만남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영위해야 한다.   『이방인(L’etranger)』의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인생에서 중요한 짐을 네 가지로 말했다. 사람은 그 짐을 지고 고생하며 살아간다고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첫째는 ‘경제적인 짐’이다.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이 있어야 한다. 그 물질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 투자를 한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맡으므로 경제적인 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둘째는 ‘정신적인 짐’이다. 경제적인 짐이 해결되었다고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는다. 삶 속에 더불어 살지 않고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초조하며, 고독이 온몸을 누른다. 그 스트레스를 통해 우울감과 우울증이 동반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서 갈등과 번민이 끊이지 않고 존재한다. 사람이 고독감에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정신적인 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생(生) 자체의 짐’이다. 인간은 육신을 입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이 자체가 짐이라는 것이다. 갓난아이로 태어나 부모의 보호 속에 이웃을 만난다. 그 성장 기간을 통해 많은 실수와 더불어 발전하여 성숙한 모습으로 되어 간다. 그렇다고 마냥 부모의 슬하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독립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힘겨운 삶을 영위해 간다. 그 일생 자체가 짐을 안고 살아가기에 고통의 연속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짐’이다. 육체가 건강하다 하여 영이 건전한 것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듭나야 건강한 영이라 할 수 있다. 죄악 된 영이 그대로 있으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악한 영이 인간을 이끌고 간다. 그래서 사람은 영으로 하나님과 만나야만 한다. 그 만남을 위해 성경 말씀을 인간에게 주셨다.   이 땅의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오직 인간에게만 영을 주셨다. 하지만 에덴 동산에서 그 영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되어 육체적인 고통과 더불어 영적인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성경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은 구약에 약속한 메시아, 이 땅에 성육신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이 육과 영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죄에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만 한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 충만한 생활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신다. 지금, 여기, 삶의 현장에서 나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하십니까?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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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11-30
  • ‘감리회거룩성회복을위한비상대책협의회’ 사무총장 민돈원목사
      ◆감리교 안에 단체를 만들게 된 배경은? =감독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10년 동안 감리교 안에 너무 많은 혼돈과 갈등이 있었다. 지금 감리교는 미아와 같다. 그래서 현장에서 목회하는 뜻 있는 목회자들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감리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고자 함께 단체를 만들고 활동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반대운동도 이런 활동 중 하나이다.   ◆감리교에는 연회, 총회라는 공적인 조직이 있다. 이런 공적 조직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감거협은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단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2주 전에 신임 감독회장과 만나서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다. 그래서 교단이 잘하는 부분은 함께하고, 개선되고 시정되어야할 부분이 있으면 이를 말할 것이다.   ◆감리교 안에 감거협과 성격을 달리하는 단체도 있다. 같은 교리와 장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렇게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감리교는 같은 교리와 장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성경이 동성애를 용인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성경은 동성애를 죄라고 단정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이러한 목소리를 계속 낼 것이다.   ◆교회협은 차별금지법을 찬성하고, 감리교는 교회협의 핵심 교단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차금법에 찬성하는 교회협과 우리는 의견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깊이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본다. 감거협에 참여하는 회원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교단과도 이 문제를 놓고 심도 있는 대화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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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11-26
  • 정성구박사 칼럼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앞으로 지금 쓰고 있는 100원짜리 동전이 없어질 듯하다. 그 이유는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상이 친일화가인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이기 때문에 폐기한다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현충사의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친일화가인 장우성 화백이 그렸다는 이유로 그것도 뜯어내서 폐기했다고 한다.   정부가 의논해서 결정한 것을 뭐라고 토를 달지는 않겠지만, 일반인으로서는 그가 한국 화단의 훌륭한 화가였던 것도 맞고, 또 일제시대 때 조선민전에 출품하여 입선작상을 받은 대표적 화가로 알고 있다.   그 화가가 구체적으로 무슨 친일행각을 했는지는 일반인들에게 자세히 알려진 바도 없다. 혹시 그냥 모 단체에서 만든 친일인사 명단에 장우성 화백이 있으니 친일청산의 차원에서, 그의 작품인 이순신 장군상을 공식영정으로 사용할 수 없고, 새로운 영정을 만든다고 들었다. 그것은 친일 청산이라기 보다 일종의 문화혁명이다. 들리는 말로는 그분 말고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 화패에서 사라질 것 같다. 혹시 이러다가 화패개혁을 하려는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제의 잔재를 없앤다면 지금의 시청본관도, 서울역 청사도, 한국은행 본사도 헐어야 되지 않겠는가?   사실 누가 이순신 장군을 친히 본 사람도 없고, 현재는 그의 사진도, 그림도 없고, 그의 생김새를 글로 나온 것도 없는데, 당시 작가가 이순신 장군상을 그릴 때는 많은 글들을 참고 했을 것이고, 작가의 영감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1750년대 곧 18세기 중엽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그림을 하나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동아대학이 사본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들었지만, 내가 입수한 작품은 미국의 동부 볼티모어(Baltimore) 시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사본으로 가지고 있다.   「忠武公 李舜臣」이라는 영정에는 당시에 굵은 삼배 같은 천에다, 노랑 배경에 흡사 징기스칸을 닮은 무인형으로 그려져 채색되어 있다. 아마도 이순신의 모습이 흡사 세계 제패를 꿈꾸던 몽고의 징기스칸을 닮았을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한 모양이다.   당시 그 화가가 누군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그 시대에 이순신장군에 대해 최선을 다해 그렸을 것이다. 그는 친일파가 아니었고, 친미나 친중도 아니었고, 연대도 이조 중기에 그렸으니 이순신 영정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   예술을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비판 하는 것은 모두 사회주의, 공산주의 숫법이다. 나의 스승이요, 20세기 칼빈주의적 미술사의 최고봉이었던 화란 뿌라야 대학교 교수였던 한스 로끄마꺼(Hans Rookmaaker)박사의 말이 생각난다. “예술에는 중립이 없다!”고… 예술 작품에는 반드시 그 작가가 가진 사상과 세계관이 들어 있다.   그런데 장우성 화백의 작품에서 일제를 고무, 찬양하는 것이 나타났는지? 아니면 글을 통해서 어떻게 친일을 했는지 우리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친일 척결을 하는 것도 혹시 무슨 정치적, 또 무슨 사상적 의도가 배후에 깔려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일제 식민지 시절에 친일을 안한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 심지어 독립유공자 가운데도 친일파가 있다고 들었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가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와 박관준 장로를 비롯한 한상동, 이인재, 손명복 목사 등 산 순교자들과 해외에 나가서 일하던 독립운동가들과 신사참배를 피해서 해외에 망령 한 인사들만이 지조를 지켰고, 나머지 조선사람은 전부 친일파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 영웅이자, 자부심인 마라톤의 영원한 영웅인 손기정 선수를 한 번 생각해 보자. 나는 1936년에 독일 베를린 올림픽 경기에서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 당시 독일에서 인쇄된 칼라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시상대에 올라가 붉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올라 섰었다. 나는 그 사진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손기정 선수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우리의 영웅으로 언제나 가슴에 남아 있다. 그 옛날 동아일보 기자가 흑백사진에 나온 일장기를 지워버리려고 밤에 몰래 조판실에 침입한 사건도 있었다. 그런데 84년이 지난 지금 붉은 일장기를 단 그의 모습을 보고 그를 친일파로 몰아갈수는 없다.   나라를 잃은 그 시대에 그는 가슴에 붉은 일장기를 달았지만, 생명을 걸고 조선의 건아로서 뛰고 또 뛰어 월계관을 썼다. 그러나 그는 일본국적이었다.   앞으로 두고 볼 것이다. 새로운 이순신 장군 영정을 그리는 화가가 혹시 종북 화가가 아닐는지, 또는 중국을 지독히 좋아하는 친중 화가가 아닐는지, 아니면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가진 화가가 아닐는지,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겠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는 정치, 경제 뿐 아니라 예술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100원짜리 동전이 다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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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3
  • 한국교회정론-1
    소기천(장신대 신약학교수/한국교회정론대표)   오바마가 미국에 남긴 공헌은 오바마 캐어인 전국민 의료보험체계와 동성애 인권 논리이다. 트럼프가 기적적으로 클린턴을 꺾고 45대 미국 대통령직에 오르자마자 곧바로 이 두 가지를 폐기하기 위해 연방대법원에 가지고 갔지만, 판결이 번복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과연 더는 논란이 없는 문제일까?   오바마 8년 동안 미국이 정책적으로 동성애, 젠더 정체성, 사회적 성평등, 낙태 조장, 이슬람 난민 허용,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 등을 실시하여 진보적인 소수 종교인에게는 지지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침묵하는 다수인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많은 기독교인이 민주당의 기세에 눌려서 살던 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반전이 일어나면서 기독교가 숨을 쉴 수 있었다. 물론 지난 트럼프 재임 4년 동안 온두라스에서 시작된 이민자들이 무작정으로 걸어서 미국으로 향하는 대열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음으로써 꽉 막힌 상황에서 미국의 반이민 정서에 인권 문제까지 불을 붙임으로써 논쟁이 가중되었지만,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함으로써 어느 샌가 매스컴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국경을 봉쇄하여 미국인의 일자리를 사수해야 한다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어느 사이에 쿠바 난민들이 플로리다에 대거 몰려가서 터전을 마련한 이후의 상황에서 같은 히스패닉계이지만 쿠바 이민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옹호하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반이민 장벽을 쌓은 것을 지지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4년 전의 대선처럼 플로리다를 민주당에게 내주지 않은 보상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7천만표를 얻은 트럼프는 재임으로까지 이어지기 어렵게 되었고, 바이든이 미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7천5백만표 이상의 득표를 하고 대의원의 과반수를 얻은 상황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승복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반발하기 때문에 바이든은 법적으로 당선인의 신분을 얻지 못하는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혼돈의 와중에 미국에서 국론 분열과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기에, 누군가는 나서서 분열을 치유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일이 시급하다. 그동안 미국 대선은 정책 대결보다는 서로를 공격하면서 상대방에게 프레임을 씌우는 일에 급급한 것이 선거가 끝난 상황에서도 트럼프가 좀처럼 백악관을 내줄 것 같지 않은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일단 대선이 끝났고 개표가 말해주듯이 바이든이 대의원의 매직 넘버인 270표를 훌쩍 넘긴 상황이다.   바이든은 3수라는 우여곡절 끝에 당선되었지만, 과거에 그의 정치 역정이 순탄치 않은 것처럼 앞으로도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일이 전혀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바이든은 트럼프가 어려운 여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이전에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린 정책에 대해 인정하고, 미국인의 자유를 구속할 수 없다는 트럼프에 대해서 전염병을 핑계로 사사건건 마스크만을 물고 늘어지고 여론몰이를 통해서 트럼프를 조롱하고 깎아 내린 가벼움을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중시하여 주례도 마다하지 않았던 바이든이 어떤 경우에서도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트럼프를 향해서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남은 대선 유세를 마무리한 행보를 비난한 것이나 자신의 선거에 유리하게 거액의 광고를 통하여 계속해서 조롱한 것은 결코 세월이 지나간다고 쉽게 잊힐 일이 아니다. 그만큼 바이든은 절대다수의 언론 매체가 지지하는 기반을 바탕으로 트럼프를 공격하면서 그를 지지하면서도 침묵하는 샤이 트럼프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바이든이 대선에 이기고서도 법적으로 당선인의 신분을 쉽게 얻지 못하는 것도 이런 연유와 무관하지 않다.   오바마 8년의 재임 기간에 교회는 양분되었다. 프린스톤 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미국장로교회가 동성애 합법화를 선언하고 동성애자 목회자를 허락하게 되자, 2천여 개의 교회가 교단을 탈퇴하여 1/3로 교세가 줄어들었다. 프린스톤 출신이 한국 신학교에 대거 몰려들면서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몇몇 교단은 동성애 인권 논리의 싸움터로 변질되었다. 이것을 거울로 삼은 미국감리교회는 동성애자 목회자를 허용한 결정을 뒤엎고, 오히려 동성애 지지파와 동성애 반대파가 교단을 분립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파국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성경은 동성애를 죄악으로 말한다. 그런데 신학교가 동성애를 성경대로 죄악이라고 규정하면서, 동시에 인권이라고 교묘하게 포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느 인권 선언문과 권리장전에 동성애가 인권이라고 명시되어 있는가? 동성애를 인권으로 옹호하는 것은 상황 윤리를 근거로 하는 논리이며, 사회적 성과 젠더 정체성을 옹호하려는 반성경적인 주장이다. 트럼프가 승복하지 않고, 미국의 몇몇 주에서 발생한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기독교가 동조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바이든은 깊이 생각하고, 오바마의 8년 재임 기간과는 다른 인권 정책으로 동성애 문제에 접근하여야 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죄악이다. 인권으로 옹호를 하므로 동성애자가 파국으로 치닫다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호스피스 병동에 가서야 뒤늦게 뉘우치고 동성애로부터 돌이켜서 탈동성애자가 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이미 때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이후이다.   바이든은 다시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 인권 논리에 빠져서 동성애자 결혼식 주례를 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의 진리대로 굳게 믿고 나가는 샤이 트럼프, 곧 다수의 보수적인 기독교인을 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든은 4년 내내 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바이든은 성경의 진리를 존중하여 동성애자가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 오피니언
    • 정론
    2020-11-23
  • 시인 최 선박사의 행복칼럼-34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섬나라 일본제국이 대륙을 점령하고자 한반도와 간도지역에서의 만행들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고통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일제잔재들이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다. 금년이 일본제국에서 해방 된지 75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생각하며 영화 ‘동주’의 주인공들인 저항 시인 윤동주와 청년문사 송몽규를 기억하고 그들의 삶의 여정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1917년 동년에 지금의 중국 연변자치구 용정시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1925년 4월, 8살이 되는 해에 윤동주, 고종사촌 송몽규, 외사촌 김정우, 문익환 등과 함께 명동소학교에 입하였다. 그들은 총명하고 학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면서 범사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여 동학들 중에서 나란히 리더들이 될 정도였다. 송몽규와 윤동주는 소학교에서 조선의 역사와 민족주의 및 독립사상교육을 받았다. 특히 그들은 학교 행사가 있을 때에는 태극기를 걸고 애국가를 불러 애국정신을 높였다. 매우 탁월한 성적으로 명동소학교를 졸업한 그들은 용정시 명동촌에서 십리 이상 떨어진 화룡시에 있는 화룡현립 제1소학교 6학년에 편입하였다.   은진중학교 3학년 때 독립사상과 민족의식을 깨우쳐 주시던 민족주의자 명의조(名義朝)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송몽규는 민족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결단을 하게 된다. 그는 4학년에 진급하지 않고 은진중학교를 중퇴하고 남경에 있는 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의 한인 반에 입학하였다. 이 한인반은 중국 국민당정부 장개석 주석의 지원하에 한국임시정부의 요인으로 활약하던 김구 선생님이 반일민족독립 전쟁의 군사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운영되었던 학교로 송몽규는 군사기능을 열심히 훈련하여 학생들을 인도, 조직하고 문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1938년 대성중학교를 졸업한 송몽규는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윤동주와 함께 서울에 있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그 곳에서 그들은 민족정신을 키우고 민족문화를 익혀나가는 열매를 얻게 되었다. 1942년 윤동주와 송몽규는 2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송몽규는 교또재국대학 서양사학과에 윤동주는 도쿄입교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일제당국의 조선민족과 문화말살정책을 비난하여 1943년 7월에 <도쿄조선인학생 민족주의집단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당했다. 그 해 일제에 의해 징병제가 공포되고 일괄적으로 징용령장이 발부되었다.   1943년 7월 첫 학기를 마친 윤동주는 도쿄대학에서 재학 중이던 송몽규와 함께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7월 14일) 도쿄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윤동주의 죄명은 <독립운동>으로 2년 언도를 받고 규슈후까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그곳에 같은 죄목으로 송몽규도 2년 언도를 받았다. 윤동주는 고향집에서 보내준 <신약성경>을 옥중에서 읽었다. 방부제 주사를 매일 맞았던 그들은 일제의 생체실험 대상(시체 해부를 위한 주사)으로 시달리다가 꿈에도 그리던 민족의 광복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1945년 2월 16일에는 윤동주 사망하였고, 3월 10일에는 송몽규가 옥사하였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민족에 대한 충정과 민족문화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분투하였으나 청년문사 송몽규와 저항시인 윤동주는 일제당국의 무단적인 폭압에 비참하게 희생되었다. 한 줌의 재가 된 윤동주와 송몽규는 고향의 품인 간도 용정시 묘소 서쪽에 묻혔다.   지금까지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조명해 보았다. 생애 자체가 처절한 일제 강점기의 중심에서 그들의 나라사랑과 가슴 아픈 최후를 기억한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짧은 생애를 살았던 고귀한 발자취를 반추하며 추모한다.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날 그들을 잊지 말고 각자의 생활 속에서 국가를 사랑하자. 아울러 두 분의 삶을 교훈 삼아 작금에 처해 있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어두운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 오피니언
    • 칼럼
    2020-11-23
  • 유일교회 교육사역자·서울신대 이경선박사
      “가나안 교인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 전 먼저 교회가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공동체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말하는 서울신대 이경선박사(사진).   이박사는 유일교회(담임=김현석목사)에서 미래세대 양육을 위한 교육사역자로 활동하며 기독교의 본질인 복음을 다음세대에게 계승할 수 있도록 전도전략 강연자로 교육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가나안 교인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이박사는 “교회를 등지고 나갔다는 사실만으로 가나안 교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에 손가락질하는 태도가 되려 그들을 교회로 돌아오도록 하는 길을 막는 요인이 된다”며, “가나안 교인은 진실된 믿음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찾고 있는 문제의 답을 온전히 내놓는 교회 공동체가 생겨날 때 다시금 이들이 교회로 돌아올 것이며 이를 위해 교회가 부단히 지적·영적 탐구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전했다.   교회 운영이나 조직 등을 놓고 의구심을 품는 교인을 질타하기 앞서 그들과 소통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박사는 “가나안 교인 상당수가 믿음의 회의보다는 교회의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에 반감이 들거나 거기에 반대하는 이들을 쫓아내는 교회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며,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는 사회에 맞추어 적응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과거 성공사례를 금과옥조처럼 여기기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교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과 소통하며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 오피니언
    • 인터뷰
    2020-11-19
  • 홍대인파스타 어규성점장
      “코로나19로 홍대 주변의 많은 사업체들이 폐업했다. 그래도 우리는 이전부터 맛집으로 알려져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며, “하지만 직원수는 거의 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직원수를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매출이 나오질 않아 마음 아프지만 기존의 직원들과 계속 함께할 수 없었다. 그점이 못내 아쉽다”고 말하는 홍대인파스타 어규성점장(사진).   어점장은 “아무래도 8·15 집회가 분기점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면서 “그때 이후로 호전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름대로 매상이 회복되고 있는 시기에 급격하게 안 좋아진 후로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못하다. 언론을 보면 8·15 집회로 인해 GDP가 0.5% 감소했을 만큼 큰 타격을 입었다는데 그 말이 실감이 난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이후의 매출에 관해 어점장은 “우리의 경우 코로나19 이전 월 매출이 8,000만 원 정도였다”면서 “대구 사태 이후 급감한 월 매출이 한 때 회복세를 보여 5,000만 원까지 됐다. 그런데 8·15 집회 이후에는 3,000만 원으로 떨어졌다. 아마 수도권의 30% 이상의 자영업자들이 그때 이후로 폐업했을 것이다. 이제는 힘들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을 정도다. 사실 이러한 상황을 버텨내야 한다는 것에 지치고, 또 이 상황이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에 답답하다. 그럼에도 이겨내야 하기에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어점장은 기독교인으로서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이번 위기가 기독교 집회로 인해 발생한 점이 못내 아쉽고 믿지 않는 직원들에게도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전했다.
    • 오피니언
    • 인터뷰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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