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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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공공신학이란 무엇인가 1
      최경환 공동대표   참된 신앙은 교회에서만이 아닌 사회 속에서 구현되어야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교회의 공공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든가 제자도의 신학을 넘어 이제는 공적인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단순히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이 직장에서 성실하고 착하게 사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신학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특별히 오늘날과 같이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공공신학이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고, 국내에도 이제 조금씩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먼저 공공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공공성은 어떤 의미이며, 기존에 신학의 한 분과로 다루던 기독교윤리와 무엇이 다른지 설명해 보려 한다. 일반적으로 공공성은 사적 영역과 반대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대부분은 사적인 신앙으로 환원되는 경우가 많다. 신앙생활을 개인의 신앙체험이나 내면의 영성으로만 설명한다든가, 조금 더 확장하면 교회중심주의로 이해하려는 경우가 많다. 분명 신앙의 어떤 부분은 사적이다. 하지만 공공신학은 신앙의 공적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한 명의 시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신앙은 단순히 골방이나 교회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부분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일반 사회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앙은 공적이다.   공공신학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이후 시민사회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신학의 제반 문제들을 다룬다. 여기서 공공신학은 현대사회 속에서 민주적인 삶을 떠받치고 있는 활동 영역, 즉 ‘공론장’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이 창조 세계를 통해 드러난다고 믿는 자들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성품을 통해 그 사랑을 알 수 있고,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을 믿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공적 영역으로 나가야 하며, 이 세상의 영혼과 문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복음은 공적인 영역에서 선포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공적인 영역에서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복음, 교회, 신학은 항상 세상과 관련이 있고, 구체적으로 공적인 삶과 관련이 있다. 즉 복음은 창조, 역사, 문화, 사회에서의 삶, 그리고 인류애 전체를 포괄한다.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위치와 부르심에 대한 이러한 보편적인 인식은 전통적으로 신학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했다. 공공신학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적인 삶 속에서 교회의 위치와 교회의 사회적 형식, 그리고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을 주로 다룬다.  교회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항상 세상 안에 존재하며 세상의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 또한 자신이 알든 모르든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공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회는 세상, 정치, 시민사회와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신학적으로 고민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공신학의 과제라 할 수 있다.   / 신학박사,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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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9
  • 선거와 한국기독교 - ④
    배덕만교수 선거와 한국기독교 - ④   근본주의·반지성주의의 실수와 기독인의 올바른 선거  한국 개신교가 근본주의적 성향을 갖는 것이 문제되는 이유는 특정한 정치집단이나 정치적 성향과 배타적으로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해방과 한국전쟁 후 강력한 반공사회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개신교는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남한의 우익정권에 적응하는 성향이 강했다. 그런데 이것이 원래 기독교의 본질과 같은 흐름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한국 개신교는 보편적인 형태, 즉 성경적으로 정통성에 선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누구만의, 누구만을 위한, 특정 정치성향을 지지하는 기독교가 되어서는 안된다. 정치와 이념의 갈등 속에서 특정한 진영에 서 있는 기독교가 아니라 모두를 아우르고 제3의 지대에서 중재하고 통합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역사를 견인해 나가는 자리에 서야 한다. 시대와 역사를 초월해서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본래의 기독교로 돌아가야 한다.   보통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과 성서비평학, 그리고 진화론에 대한 신학적 고민으로 등장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신학적 근본주의는 세월이 지나가면서 윤리 문제가 파생되고, 정치경제적 문제와 연동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근본주의는 신학적 문제(성서무오설, 세대주의종말론)만 관심을 갖는데, 윤리적으로 가니까 복제문제, 낙태문제, 동성애문제가 이슈가 됐고,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여기에 반공, 친미가 한국 근본주의에서 중요한 아젠다라고 다뤘다.   오강남교수(리자이나대 비교종교학)는 모든 종교는 심층과 표층이 있다고 말한다. 보다 진리를 추구하는 차원이 있기도 하지만, 종교의 힘을 빌려 현실 문제 해결하려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근본주의의 상당수가 후자, 표층적 종교에 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신학적으로 출발했는데, 성서비평학이나 진화론, 과학의 발견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학문의 장에서 진지하게 대결하지 않고, 오히려 현대신학이 무신론적이고 세속적 인본주의라고 봤다. 세상의 학문적 발전을 악마의 궤계로 폄하했다. 그래서 일반대학 내의 신학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순수하게 성경과 교리만 가르치겠다는 ‘성경학교’ 혹은 ‘성경대학’에 진학하고 목회자로 사역했다.    기독교 본질에 대한 공부필요, 신학자와 목회자의 몫. 이런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세상 학문을 비난하고 과학적 성취를 반기독교적이라고 가르쳤다. 미국의 경우 보수적인 정권의 지지자 중에는 이런 분위기에서 교육받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것들이 먹혀들어가는 것이 반지성주의의 폐해다.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근본주의적 신앙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총체적이고 상식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한국교회를 약화시키는 근본주의와 반지성주의를 극복하고 올바른 신앙적 기준에서 행동할 수 있을까. 결국은 공부다. 한국 현대사와 한국 기독교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공부,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마치 진리인 듯 뿌려지는 기도제목 이라는 명목의 가짜 뉴스 등에 반대되는, 제대로 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노력들이 교회와 단체마다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계몽시킬 책임은 목회자와 학자들에게 있다.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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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2
  • [신학] 선거와 한국기독교 3
    배덕만 교수                                       그리스도인은 현실에 대한 날카롭고 예언자적인 태도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이 글을 마치며 이상에서 선거의 역사를 간략히 살피면서, 각 선거에서 개신교가 참여ㆍ대응했던 방식도 함께 검토했다. 이제. 이런 역사와 제언을 토대로 곧 총선을 앞둔 개신교인들을 향해 몆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이번 선거을 통해, 개신교는 특정 이념 및 정당과 자신을 배타적으로 동일시 해왔던 오랜 관행을 청산해야 한다. 분단과 냉전을 배경으로 남한에서 재구성된 개신교는 ‘반공, 친미, 친자본’의 전위대로 맹활약을 해왔다. 덕택에, 특정 권력층이 부여한 특혜와 특권을 누리면서 오랫동안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특권적 지위를 획득ㆍ유지하기 위해, 개신교는 복음을 타협하고 예언자적 책임도 회피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황금기는 막을 내렸다. 따라서 특혜와 특권을 부여했던 특정 정권 및 이념과의 밀월관계도 청산하고 철저하게 “백의종군”해야 한다. 그래야 "빛과 소금"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착오적 극우세력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둘째, 당분간 광장에서 함성을 멈추고, 골방에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분명히, 개신교가 한국의 문화를 선도하고, 정치와 경제를 이끌었던 때가 있었다. 수와 양은 여전히 소박했지만, 사회적ㆍ문화적 영향력은 비범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해방 이후 개신교는 몸집이 급속도로 거대해지고 힘도 막강해졌다. 장로 대통령을 만들어 내고 법안을 폐기시킬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전성기가 막을 내리자, 광장에 모여 폭언과 망언의 말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광장에 빈번히 다수가 모여 막말을 쏟아낼수록, 사회의 반응은 싸늘해지고 혐오감은 급상승했다. 동시에, 개신교 내부의 모순과 오류가 만인의 상식이 되면서 어느 새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분명히, 개신교가 담대히 광장으로 나가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광야와 골방으로 물러날 때가 아닐까? 분명히 세상이 듣도록 함성을 외쳐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침묵하며 자신을 성찰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   셋째, 이익집단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ㆍ공적 종교로 성숙해야 한다. 그동안 선거에서 개신교가 보여준 모습은 과거에 향유하던 특권을 유지 혹은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정치 집단과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선거의 존재 이유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그 순간 개신교는 자신이 또 하나의 이익집단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기적 욕망으로 끊임없이 분열하고 갈등하는 세상에서 보편적 가치와 공적 진리를 전파하여 상생과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고등종교의 본질이고 사명이다.    그런 숭고한 책임과 역할을 포기하는 종교는 단지 미신과 사이비일 뿐이다. 따라서 개신교가 이기적 욕망에 집착하여, 보편적ㆍ공적 가치를 외면할수록 한국사회에서의 입지는 빠르게 축소될 것이다. 반면, 타자를 존중하고 공동체적 이상에 충실할수록,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용기 있게 내려놓을수록, 한국사회는 개신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이번 선거가 개신교에게 성숙과 변화의 기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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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2
  • [신학] 위기의 한국교회와 하나님나라의 문화공동체
      김선일 교수                                                   오직 교회만이 자신들 밖의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복음의 문화와 구원의 문화가 교회 내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인의 세계관과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면, 두 문화의 확립을 토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핵심 실천인 선교와 전도의 문화가 조성된다고 볼 수 있다.  ‘선교’의 원래 뜻은 세상으로 보냄 받음이자 사명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도는 개인의 회심을 목표로 한다. 선교는 세상에서 복음을 구현하는 삶이라면, 전도는 그 복음에 기초한 개인을 위한 구원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선교학자 데이나 로버트(보스턴대)가 비유한 것처럼, 선교와 전도는 몸과 심장의 관계와 같다. 선교가 총체적 사역이라는 측면에서 몸에 비유할 수 있다면, 전도는 생명을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심장과 같다는 의미다.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선교 사역에는 교육, 의료, 환경운동, 정의구현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선교적 실천들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것은 바로 복음전도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의지하는 인간으로 거듭남이 없이 선교는 지속적인 추동력을 지닐 수 없다. 이는 전도와 선교의 유기체적 이해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니는 추동력을 강력하게 견지하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선교적 방향성을 겸비하게 해준다.   선교학자 데이비드 보쉬나 레슬리 뉴비긴 등에 의해서 선교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내심에서 유래하며, 하나님이 세상과 이웃에서 역사하시는 일에 대한 민감한 관심과 참여라는 인식을 기초로 최근 선교적 교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선교적 교회론이 ‘하나님의 선교’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에큐메니컬 선교운동에서 기본 착상을 빌려온 것은 맞지만, 복음주의 권의 선교적 교회론은 하나님-세상-교회라는 구도에서 의존하지 않고, 전통적인 하나님-교회-세상이라는 구도를 확대 갱신하였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어떠한 일은 하시는가?’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언하는 공동체로서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욱 근본적으로 던진다. 선교적 교회론이 공동체를 중요하게 다루며, 하나님의 선교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선교적 교회론은 선교적 문화, 즉 선교적인 공동의 생활 양식을 촉진해야 할 것이다. 이는 또한 개인에게는 선교적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게 할 것이다.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윌리엄 템플은 “교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다”라는 심오한 선언을 남겼다. 나치에 항거한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또한 “교회는 오직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 교회가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선교는 교회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리듬이 지역과 이웃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선교적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단순히 세상을 위한 몇 가지 선한 실천들을 간헐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 타인을 향한 관심과 환대의 리듬이 형성되게 하는 것이다. 교회 건물과 집회 지향의 삶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이웃을 돌아보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실천이 아닌, 소그룹과 공동체가 함께 헌신하고 상상하며 참여하는 생활의 양식이어야 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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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2
  • 웨슬리신학연구소서 3월 설교연구모임
      ◇서울신학대 웨슬리신학연구소는 「하나님의 편재하심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설교연구모임을 진행했다    서울신학대학교 웨슬리신학연구소(소장=김성원교수)는 지난 6일 이 대학과 온라인에서 「하나님의 편재하심에 대하여」란 주제로 설교연구모임을 진행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주제와 동일한 제목의 존 웨슬리의 설교를 함께 읽고 그 의미를 모색했다. 특히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임을 살펴보았다.    이 연구소 소장인 김성원교수는 “성경을 보면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증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시편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고백하고 선포하고 있다. 존 웨슬리 목사가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주제로 설교한 것은 성경말씀에 충실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면서, “웨슬리목사가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에서 발견한 윤리적 교훈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즐거워하라고 하는 마지막 권면은 우리에게 특별히 귀중한 영감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또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로 파악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라는 교훈도 분명히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성경의 더욱 깊은 가르침은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이며 동행이며 교제를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면서,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은 우리를 어디에서나 감찰하시지만, 그 눈은 우리를 가시덤불 속에서 발견하고 구원하시려는 선한 목자의 눈길임을 우리는 새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무소부재, 하나님의 편재는 궁극적으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의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면서, “연약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마누엘 함께 하심은 우리의 영원한 축복이며 영원한 감사의 제목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토의시간에서 강춘이전도사는 “하나님의 편재하심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웨슬리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동의하며 성령님의 깨달음을 구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최병은목사는 “당장 강당에 올라가서 그대로 읽고 전해도 웨슬리의 설교는 현재성을 갖고 있고, 설교를 읽을 때 감동이 있으며 역동성이 있다. 코람데오의 신앙은 요셉이야기를 많이 인용하는데, 믿음의 사람은 코람데오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편재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죄의 유혹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신앙은 주님과의 독대시간을 통해, 성령의 조명을 받는시간을 통해 이루어 갈 수 있다”고 밝혔다.    류재성목사는 “오늘날 웨슬리에 대한 새로운 적용과 질문들이 필요하다”면서, “웨슬리가 편재성에 대한 설교를 당시 18세기 영국사회에 대한 것으로 적용했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이 하나님의 편재성에 대한 신학으로부터 새로운 적용이 필요해 보이는데, 예를들면 소외, 불안, 분열, 갈등 등을 겪는 자들에게 그들 가운데도 편재해 계시는 하나님의 회복을 우리는 전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류박사는 “편재하심은 부활신앙에도 중요한데, 이 부활신앙은 도마와 막달라마리아와 같이 경험될 수 있다”. “예수의 몸에 손가락을 넣어 본 도마가 있는가 하면, ‘나의 몸을 만지지 말라’라는 명령을 들은 막달라 마리아도 부활의 경험을 강하게 체험한 것이다. 이처럼 편재하심이라는 것도 손에 쥐는 것(도마)만을 의미하지 않고, 내어줌, 비어주는 것(막달라마리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교계종합
    • 일반
    2024-03-10
  • 사단법인 느헤이먀 사역을 소개한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신학 연구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 땅에 하나님나라 구현과 한국교회 발전과 개혁에 헌신   사단법인 느헤미야(이사장=이문식목사)는 ‘하나님나라의 구현과 한국 기독교의 재구성’이란 비전으로 2010년 시작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성장해, 2019년에 공신력을 가진 단체로 법인화된 이름이다. 이 단체는 처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라는 이름으로, 한국교회의 퇴보와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잃어가는 것을 목도하던 소수의 신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 하며, 이 땅의 교회를 다시 일으키고자 한 개의 벽돌을 쌓는 마음으로,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운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작은 무리의 사람들로 시작한 움직임이 이제는 수많은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다양한 과정에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인격적으로 배우고자 몸부림치는 동역자들로 확장되고 있다.   창립 당시 기독연구원은 한국교회가 연약해진 이유가 신학의 부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평신도를 위한 신학교육을 통해 한국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후에 평신도뿐 아니라 목회자들을 위한 재교육 역시 필요하다는 상황을 인식하고, 이제는 목회자와 평신도를 대상으로 하는 신학교육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신학교의 입문 과정부터 신학대학원의 석사 수준의 다양한 과정이, 학식과 인격에 깊이 있는 교수진들과 함께 구성되어 있다. 기독연구원은 매 학기제로 수업이 진행 중이며, 진지하고 심도있는 신학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구현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느헤미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 사명은 ‘교회협의회 느헤미야 ’를 구성하게 된 과정이다. 교회협의회는 기독연구원의 신학적 성과들을 공유하면서 각 교회 현장에 적용할 기회를 만들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했다. 기독연구원에서 교육을 받고 현장으로 나가게 될 목회자 후보생들을 구체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하여, 바른 목회자로 세우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동단체는 평신도를 하나님나라 신학으로 무장하여 교회개혁의 주체로 세우는 일과 더불어, 목회자로서 소명을 받은 일꾼들을 안수하고 잘 훈련시켜, 각자의 소명에 맡는 사역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단체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약해져 가는 한국교회를 되살리고자 하는 사명에 지속적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와 ‘교회협의회 느헤미야’라는 두 날개로, 하나님나라와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 단체는 △교회 및 단체, 교육기관의 연합사업 △전도, 국내선교외 사회선교 △교회개척 사업 △신학교육 및 목회자 재교육 △남북통일사업과 남북교회의 협력사업 △소속기관의 권익보호와 법률적 보호 △성서연구와 교육 및 보급 △청소년 및 청년 선교사업을 주요사업으로 헌신하고 있다.   이들은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구하고 한국교회가 새롭게 일어나는 일에 헌신하고자 하는 동역자들에게 함께 하자고 손짓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이 작은 사역의 한 걸음이 한국교회의 남은 그루터기에서 새싹을 틔우는 귀한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이 사역에 동참할 교회와 성도를 초청한다고 전했다.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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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신앙연구소장 제임스강 목사, www.bo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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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4
  • 카도쉬아카데미, 성교육 표준안 발표
      초등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성교육내용 포괄 성경적 성교육의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한 신학적 기초   세속주의가 교회의 존재를 위협하는 시대에 성교육 역시 세속주의에 물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카도쉬아카데미(공동대표=이재욱.최경화)는 성경적 성교육의 ‘스탠다드’, 표준안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교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카도쉬아카데미 공동대표 이재욱목사는 이번 표준안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먼저 표준안을 발표하게 된 배경에 대해 “카도쉬아카데미는 2019년 하반기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2018~2019년 시기에 교계에 성경 기반으로 한 성교육에 관심이 높아졌는데 각각 나름대로 교육을 해오고 있어서 무엇인가 기준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작업에 돌입했고, 2년 만에 이번에 드디어 표준안을 만들게 됐다. 하나님께서 그 매뉴얼을 만들어 손에 들게 하셨다고 고백한다”고 말했다.   ‘성경적 성교육 표준안’은 초등학교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 학년마다 큰 4개의 주제가 설정 되어 있으며, 내용은 여러 가지로 세분화 되어 있다. 그래서 1년에 4회기씩 교회 및 기독교대안학교 또는 일반학교에서 바로 강의할 수 있게 구성했다. 이번 표준안의 특징은 건강한 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표는 “성경적 성교육이라 할 때 중요한 것이 바로 건강한 신학적 기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풀어내려고 노력했으며, 믿음의 선배들이 작성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등을 참고하여 강의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이번 표준안 마련을 위해 20여 명의 카도쉬 전문강사들이 하루에 10시간 넘는 시간을 들여 진행했다. 이대표는 “선생님들 모두 1년 간 정말 헌신적으로 수고하였으며, 그 어려운 교육자료들을 함께 만들었다. 저와 최경화 공동대표도 밤낮 수고하며 감수 및 지도에 시간을 쏟았다. 그 모든 수고 끝에 이번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졌다. 함께 수고한 선생님들과 스탭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또 “이 표준안이 각 교회와 기독대안학교 및 일반학교에 잘 확산되기를 소망한다. 뿐만 아니라 다음세대 자녀들을 양육하는 부모세대들에게도 성경적 진리를 알아가는 귀한 열매를 맺길 바란다. 이와 같은 교육을 통해 건강한 교회, 건강한 가정으로 세워나가길 기대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카도쉬아카데미가 준비한 <성경적 성교육 표준안>은 오는 5월 2일, 서울 사랑의교회 웨스트 채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카도쉬아카데미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년에 4회기로 12년 총48개의 표준안을 만들었다. 표준안의 분량은 총 202페이지에 달한다.초등학생들은 1회기에 60분씩 강의를 진행하며, 현장에 따라 30분-30분씩 나눠서 진행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1회기 90분 강의이며, 현장에 따라 90분 연속 혹은 40분-40분씩 나눠서 강의하게 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 모든 회기, 해당 교육주제에 맞는 구체적인 교육계획안과 연계 활동 계획안도 갖추어 그 완성도를 높였다. 여기에 더해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미디어를 주제로 하는 강의표준안도 포함하고 있다.   이번 성교육 표준안은 카도쉬아카데미 공동대표인 이재욱목사(예장고신 참사랑교회)와 최경화 공동대표(예장합신 새하늘교회)가 집필하였다. 감수에는 이상원교수(전 총신대학원 조직신학), 김두식목사(고신 부산로고스국제크리스천스쿨 교장), 박광서목사(고신 기독교미래인재연구원), 김민호목사(대신 회복의교회), 박준우목사(합동 리바이벌북스 편집장), 황지영박사(고신대 기독교상담대학원 겸임교수), 민성길교수(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 이명진소장(성산생명윤리연구소), 문지호회장(의료윤리연구협회), 남궁숙교수(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이창숙원장(숲속이삭어린이집)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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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6
  • 계시록의 주제는 하나님나라와 공의
      왜 자신이 창조하신 우주를 멸망시키려는가에 대한 의문서 출발 하나님의 뜻과 그의 공의를 알고 읽어가면서 바른 해석에 도달   1. 요한계시록에 대한 칼럼 쓰기를 끝내셨는데 현재 느끼시는 소감을 말씀해주시지요.   저는 사회생활을 은퇴한 60세에 뒤늦게 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창조를 연구하는 일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 비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저는 창조론을 연구하기 위해 과학을 공부했고, 현대과학적 창조론을 연구하면서 논문과 칼럼을 계속 발표했지요. 저는 창세기 창조론을 연구한 논문에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분의 이름에서 처음이라는 뜻의 “알파”를 떼어 “알파 창조론”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 무렵에 이사야 선지자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이 하나님은 그가 태초에 창조하신 “알파” 하늘과 땅을 불태우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라고 예언한 사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요. 창조주 하나님은 왜 자기가 창조하신 우주 만물을 불태우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창조하시려고 하시는지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면서 [기독교신문]에 칼럼을 쓰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한계시록]이 그분의 “오메가 창조” 기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요한계시록] 칼럼 연재를 마치면서 지금 매우 홀가분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하나님에 대한 많은 의문이 해소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꽤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겠지요.   2. 의문이 어떻게 해소되었는지 말씀해주시지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공의에 주목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요한계시록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계시한 책으로만 이해하고 있는데,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와 공의를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읽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예수께서 하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성경을 읽는 기준이 되어야 하지요.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도 바로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과 마지막 때에 ‘아마겟돈’ 전쟁에 부름을 받은 성도들과 그리스도의 생명책 심판을 통과하는 자들입니다. 심판이 계시록의 주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는 자에게 심판은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나라는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공의를 왜곡하므로 심판도 왜곡되고 있지요. 그것이 이 세상 사람들과 성도들이 사탄의 미혹에 굴복하는 근본 원인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악과 불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이 세상의 도정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고 불의와 악을 행하는 사탄의 미혹을 배척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처음 창조에서도 그의 공의를 반영하셨고, 마지막 심판에서도 그의 공의를 반영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으니 그의 백성 되기를 소망하는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서 살아야겠지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공의로 통치되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3. 칼럼들을 읽어보면, 이제까지 제가 알고 있던 요한계시록 해석과 전혀 다른 해석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설명해 주시지요.   제가 다른 해석을 했다는 것들은 “예언의 말씀”에 없는 이 땅의 천년왕국과 휴거, 그리스도 재림의 때와 장소 등을 안다고 주장하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자기 교회에 소속된 144,000명으로 왜곡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 선지자라고 말한 것들에 대해서지요? 그것들을 주장하는 자들은 대개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 드리지요.   첫째, 천년왕국은 하나님의 나라와 따로 세워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그것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는 바가 없는 것이고, 계시록에서 말한 “천년 동안”을 왜곡해서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입니다. 계시록에서 말한 “천년 동안”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장막에서 지내도록 허락하신 보상의 시간이지요.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미혹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한 사탄을 결박해서 무저갱에 감금해두라고 심판하신 형벌의 시간이기도 하지요. 하나님의 백성이 영생하는 복은 천년왕국에서 천 년을 살다가 다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누리는 것입니다.   둘째, 휴거라는 말은 데살로니카전서 4장 15-17절에 대한 해석적 오류입니다. 그 구절을 마지막 때에 처음 하늘과 땅에 불태워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다시 창조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불태워지는 땅에서는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그 구절은 그들이 생명책 심판을 받기 위해 둘째 부활해서 그리스도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 구절을 휴거로 해석하는 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한 자들이 겨우 첫째 부활하는데, 살아서 휴거된다고 말하는 자들은 누가 무엇을 했다고 죽지도 않고 그런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지요?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은 자기를 따르라고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하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둘째 부활에서 생명책 심판을 통과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겸손하게 죽을 때까지 열심히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뒤에 그리스도의 심판을 기다려야지요.   셋째,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와 장소를 안다고 하는 말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거짓 서지자들은 큰 음녀의 자식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사탄의 무리가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환난의 마지막에 거짓 선지자들의 바벨론 교회까지 멸망시키고,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할 때입니다. 그때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군대를 끌고 내려오셔서 살아서 깨어 있는 그의 성도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사탄의 무리를 불못에 던져 넣으십니다. 그리고 땅에서 죽은 자들을 모두 둘째 부활로 일으켜서 생명책에 적힌 그의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알곡 성도들을 가려서 그의 혼인잔치에 초청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하나님밖에 모르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그때와 장소를 안다고 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 선지자이지요.   넷째, 144,000명 인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따른 옛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입니다. 144,000명을 자기 교회 신자들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 사탄의 영을 받은 바벨론 교회의 거짓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144,000명보다 무수히 많습니다. 이방인들이 무수히 인침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탄에 미혹되어서 하나님이 잘라버린 옛 이스라엘의 원가지에 접붙임을 입어서 새 이스라엘이 됩니다. 그런 사실을 알면, 거짓 선지자들의 교회를 떠나야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가 그의 복음을 계시로 다시 말해준 것입이다. 그것에서 “더하거나 제하는” 자들과 왜곡 해석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 선지자이니 주의해야 합니다.   4.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 사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앞에서 그의 창조목적을 말씀하신 것에서 시작하지요. 그리고 그의 나라 원형인 에덴동산에서 그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선이고, 따르지 않는 것이 악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지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선이고, 사망을 주는 사탄이 악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과 이야기가 바로 그런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사탄이 와서 선악과를 먹으라고 미혹할 것을 미리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사탄에게 미혹되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의 후손들 역시 죄악이 관영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와 의의 심판을 초래했지요. 성경에서 그 대표적 사례가 노아 홍수 사건입니다. 홍수의 재난에서 살아남은 노아 가족의 후손들마저 하나님을 떠나 불의한 자들이 되었지요.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택하시고, 그의 자손들인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하셨고, 다윗의 때에 이스라엘 왕국을 허락하셨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길을 떠나 사탄의 미혹에 빠지고 말았지요. 그래서 초림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게 했지요.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죽인 사탄과 이스라엘을 당장 멸망시키는 보복을 하지 않으시고, 사탄에게는 “천년 동안”의 무저갱 감금을,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을 박탈하는 것으로 그치셨습니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을 연결해서 보면, 하나님의 공의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셨기 때문에 그 정도로 그치시고, 그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 이후에는 회개하고 거듭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 새 이스라엘이 됩니다. 회개하고 거듭나는 것은 인간의 조상 아담이 사탄에게 미혹되어 하나님을 거역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탄의 문화에 빠졌던 삶을 떠나야 한다는 뜻이지요.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고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5. 끝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성장을 위해 하실 말씀이 있다면?   요한계시록을 읽는 방법에 대해 짧게 해야겠네요. 요한계시록을 읽으시되 문자주의에 빠지면 그대로 미로에 빠지게 됩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상징들을 함정처럼 배치해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의 공의를 알고 읽어가면, 계시의 방향과 사건의 구조와 순서가 보이게 됩니다. 무성한 잡초를 쳐내야 길이 보인다는 뜻입니다.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길을 따라가서 소망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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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29
  • 종말론적 창조론. 최종회
      23.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기(‘이미’, 그러나 ‘아직’)   요한은 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알고 행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서술했다. 그것은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다. 두루마리는 그리스도가 일곱 인을 뗀 것과 요한이 천사에게서 받아먹은 작은 두루마리가 있다. “예언의 말씀”은 그 두 가지 두루마리에 기록된 것이다. “예언의 말씀”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못다 이룬 하나님 나라를 반드시 완성하시겠다는 선포이다. 그 선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계시한다. 첫째는 사탄에게 미혹되어 그의 무리가 되는 자들과 음녀들의 교회에서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되는 가라지 성도들은 멸망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둘째는 알곡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흘린 십자가의 피로 희게 되기까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이다. 사실 “예언의 말씀”에 나타난 경고와 명령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교리의 알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성도들이 “예언의 말씀”을 아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두루마리를 빨지 않고, 거짓 선지자들의 왜곡된 해석에 미혹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실 사탄의 무리는 겉으로 금방 드러나지만, “예언의 말씀”을 왜곡하는 거짓 선지자는 바벨론 교회에서 활동하므로 겉으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알고 믿고 따르면서 하나님 백성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라면,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대개 “예언의 말씀”에 없는 이 땅의 천년왕국과 휴거, 그리스도 재림의 때와 장소 등을 안다고 주장하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자기 교회에 소속된 144,000명으로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실상을 돌아보자.   옛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꾸짖고 달래도 듣지 않고 사탄의 미혹에 빠져 세상의 영광을 탐하다가 결국 바벨론의 손에 그들의 왕국이 멸망 당하는 심판을 초래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는 옛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참으시고 기다리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은 옛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리스도가 옛 이스라엘에 전파하신 복음의 요지는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에게 미혹된 옛 이스라엘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로마제국의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게 했다. 하나님은 옛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여 감람나무 원 가지를 잘라내듯이 옛 이스라엘을 버리셨고, 대신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거듭난 이방의 성도들이 그 자리에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 새 이스라엘이 되게 하셨다(롬11:24). 새 이스라엘은 옛 이스라엘 144,000명과 같이 접붙임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인침을 받는다(계7:3). 인침을 받은 온 이스라엘은 그때부터 ‘이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사탄의 무리를 멸망시키고, 이 땅에서 죽은 자들을 모두 생명책에 기록된 행위에 따라 심판하고 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그때까지 그리스도의 ‘이미’ 오셨던 초림과 ‘아직’ 오지 아니하신 재림 사이에서 살아 간다. 그 ‘이미’와 ‘아직’ 사이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하나님밖에 알 수 없는 ‘카이로스적 시간이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동안 사탄 무리의 핍박을 이기는 것과 “예언의 말씀”을 “더하거나 제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빠져 그들과 같이 멸망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동안 땅에서 고난을 이겨낸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하나님 나라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에 초청되어 영생의 보상과 위로를 받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깨어서 그날에 입을 두루마기 예복을 그리스도의 피로 흠 없이 희게 되기까지 빨면서 “예언의 말씀”대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믿고, “아멘”해야 한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끝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1-12-21
  • 종말론적 창조론-22
      새 창조되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로 활약한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가르친다. 사랑은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성도들에게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과 사랑은 소망으로 수렴(收斂)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요건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망은 성도들이 죽기까지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의지적인 행위가 요구되는 소망은 신실한 성도들에게도 험난한 장애물 경기처럼 느껴진다.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소망을 위해 온갖 고난과 시련을 넘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탄의 무리가 온갖 미혹과 고난과 시련의 핍박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들의 소망을 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성경 여러 곳에서 서술되고 있다.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것은 [요한계시록] 속에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11:15)고 서술되어 있다. 그와 같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 그의 외아들 되시는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상태는, 요한이 21장에서 다시 서술하는 바와 같다. 그리스도가 요한에게 계시하신 종말적 사건들이 모두 정리된 뒤에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사탄의 핍박을 이긴 성도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안식처이다. 태초 때부터 돌이켜 보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은 땅에서 그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 백성으로 아담을 처음 만드셨다. 그때부터 사탄은 아담을 미혹하는 반역 행위를 자행했다. 하늘과 땅을 오가며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여 인간을 미혹하던 사탄은 결국 하늘에서 전쟁에 패하고 쫓겨났다. 땅으로 쫓겨 내려온 사탄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미혹했다. 사탄에게 미혹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이 땅에 초림하신 그리스도를 로마 총독에게 반역죄로 고소하여 마침내는 죽임을 당하게 했다.   그 죄악의 대가는 엄정했다. 사탄은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결박되어 감금되는 형벌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을 받은 144,00명을 제외하고는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서 첫째 부활한 자들을 인도하는 목자가 되셨다. “천 년”의 형기가 차면서 풀려나게 될 사탄은 그의 무리를 모아 다시 반역할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와 산 자 모두를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신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서 그들을 ‘아마겟돈’ 전쟁에서 멸망시키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다. ‘아마겟돈’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첫째 부활한 자들”이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내려온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성도들 가운데 살아서 ‘아마겟돈’ 전쟁에 참전하는 자들과 ‘아마겟돈’ 전쟁 승리 후에 둘째 부활한 자들의 생명책 심판에서 “둘째 사망”을 사면받는 자들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   [요한 계시록]에서 하나님 나라가 새 창조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개관해 본다. 하늘⇀-------승천하신 그리스도---‘천 년 동안’ 첫째 부활자들의 목자---지상으로 재림 무저갱⇁----결박된 사탄----‘천 년 동안’ 무저갱에서 감금------------지상으로 풀려남 땅→그리스도 승천과 사탄의 감금 후--교회와 사탄의 무리와의 투쟁—사탄 8째 왕 등극—바 벨론 멸망과 대환난—그리스도의 재림--‘아마겟돈’ 전쟁—사탄의 군대 멸망—생명책 심판 —새 창조(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혼인 잔치(하나님 나라 백성)—하나님 나라 완성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1-12-07
  • 죽재 서남동박사 조명 학술대회
    민중신학을 개척·발전시켜 세계적 사전에 실리게한 공로 두 번의 감옥생활을 함께 하며 한국의 민주화 위해 헌신 죽재 서남동목사기념사업회는 지난 1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죽재 서남동의 민중신학과 민주화운동 재조명」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서광선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삼석 국회의원(무안,신안,영암군), 박우량 신안군수, 김은경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등이 축사를 했다.   동 사업회 이사장 권진관박사(성공회대 은퇴교수)는 “죽재 서남동교수는 민중신학자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몇 안 되는 한국 신학자이다. 서교수는 안병무교수, 현영학교수, 서광선교수, 김용복박사 등과 함께 한국의 민중신학을 개척하고 발전시켰다”며, “영문으로 Minjung이라는 단어가 신조어로 세계의 유수 영문 사전에 실리게 된 것은 민중신학의 공로라고 평가되고 있다”고 의미를 전했다. “서교수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두 번의 감옥생활(약 3년)을 함께 하며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고문과 감옥생활의 후유증으로 66세의 아직 젊은 연세에 소천하여 민중신학의 완결을 보지 못한 채 한을 안고 생을 마감했다”고 말했다.   2부에서 최성환교수(목포대 교수)가 「죽재 서남동의 생애와 민주주의 운동가로서의 사상과 활동에 대한 재조명」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최교수는 “서남동의 민주화운동은 1970년대 초부터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그 외 강연, 기도회 등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방법이었다. 그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총 3년 2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겪었다”며, “그동안 서남동의 업적이 대한민국 민중 신학의 개척자라는 측면에 집중되다 보니 오히려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활동은 잘 알려지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민주 투사의 삶을 살았던 그의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면모가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형묵박사(한국민중신학회장)가 논찬했다.   이어 김성재교수(한신대 석좌교수, 전 문화관광부장관)는 「서남동의 민중신학에 대한 재평가: 세계 신학에의 공헌을 중심으로」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박사는 “사실 성서는 당시 히브리 노예들, 가장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와 더불어 산 경험을 자신들의 언행으로 전승한 것이다. 그래서 성서언어는 신학자의 해석이 불필요한, 보통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이다”며, “그런데 신학자들이 성서를 해석한다고 하면서 지식인들의 어려운 개념 언어로 바꾸어서 자신들의 해석이 없으면 성서를 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신학자의 성서해석과 신학은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해서 본래의 성서를 조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남동의 민중현장·이야기신학이야 말로 성서를 성서답게 회복시킨 정통신학이다. 따라서 이 신학은 소멸의 위기에 있는 전통신학과 교회를 살리는 생명의 신학이다”고 평했다. 여기에 한기양목사(울산 새생명교회)가 논찬했다.   끝으로 정상시목사(죽재서남동목사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안민교회)가 「죽재 서남동목사기념관 사업 방향과 전망」이란 제목으로 발표했고, 박의배목사(목포 동안교회)가 논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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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2
  • 독일통일세미나서 페니히박사 발표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것에서 협력관계로의 전환 절실 “독일의 통일 주된 원인은 동독 내부에서의 변화였다”     ‘베를린 역사와 통일연구소’(소장=김현배목사, 베를린비전교회)는 지난 7일 베를린비전교회에서 ‘독일통일 31주년 기념세미나’를 개최했다. 첫 강의는 베르너 페니히박사(Dr. Werner Pfennig, 베를린자유대학교 정치학, 역사문화학부 통일부 프로젝트 연구책임자)가 「독일 통일 이후 융합 과정 ?도전 과제 및 교훈」이란 주제로 진행했다. 페니히박사는 먼저 “전문가들이 분석할 때, 한 세기만 늦춰졌다면 독일통일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한국 통일의 어려움을 설명하였다. 즉, 분단된 상태로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한반도의 동질성 또는 ‘모두가 한 민족’이라는 의식이 약해지고 통일의 정당성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 시대에 통일을 원하는 여론이 많았다. 북한도 원했다. 지금은 통일을 반대하는 여론이 강해졌다. 이것이 통일한국으로 가는데 장애물이다”고 말했다.   이어서 독일 통일 이후 사회 통합 및 융합 과정을 짧게 소개하고 그 속에 나타난 도전과제들과 문제점들을 소개하였다. 페니히박사는 독일정부가 그 당시 직면한 여러 도전과제 중 화폐통합과 복지 시스템의 확대라는 두 가지를 예시로 들며 설명했다. 서독과 동독의 경제력이 큰 차이를 보였음에도 화폐를 통합하게 됐다. 그로 인해서 동독의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었고 동유럽에서 활동을 주로 하던 동독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또한 동독의 공공자산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민영화 되었고 헐값에 팔렸다. 화폐통합이 결과적으로는 동독에게 경제적 쇼크로 다가온 것이다. 또 당시 서독의 복지 시스템을 동독 주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였다. 이것이 독일 통일 비용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주원인 중 하나이다. 충분한 재원이 마련되기 전에 건강 및 연금 보험 그리고 실업수당의 혜택이 동독 주민들에게 확대되면서 많이 비용이 발생하였다. 페니히박사는 한반도의 통일로 주제를 옮기면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강조하였다. 남북의 관계가 적대적인 관계에서 협력의 관계로 전환 되어야 하고 이 과정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야 한다.   남북한이 친구는 되지 못해도 신뢰 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독일통일이 가능했던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서독과 동독이 여러 경제협력을 통해서 상호신뢰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대북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지난날 대북제재로 인해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북한의 정권은 핵개발을 결국 이루어냈고 대북제재로 북한 주민들만 고통을 당하고 있다. 북한의 상태는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페니히박사는 한반도의 통일은 당사자들의 문제임을 강조하면서 통일 문제의 주도권을 잡고 가야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독일 통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이 지지했고 소련이 반대하지 않았다. 동독 주민들이 변화했다. 한국은 분단된 상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안정된 상태로 있다”며, “이 상황이 변화되어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과 북한이 주도권을 가지고 협력, 대화, 의견교류를 해야 한다. 틀을 만들어 가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외부의 세력들이 대신 틀을 짤 것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베르너 페니히 박사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두 가진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로, 북한의 안정이다. 변화는 우선적으로 북한 내에서 일어나야 한다. 독일의 통일 주된 원인은 동독 내부에서의 변화였다. 선 정상화 후 통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보다 개성공단 정상화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둘째로, 분단이 그 효용성을 잃어야 한다. 지금까지 분단 상태가 동북아 정세의 안정화에 기여했고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정상화된 남북 관계가 분단된 상태 보다 내부적으로 그리고 외부적으로도 더 나은 상태로 판단되어질 수 있도록 새로운 틀을 짜야한다. 중국과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미국을 설득하면 일본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설득하는 힘은 대한민국과 북한의 강한 의지와 하나 됨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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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1
  • 독일통일 31주년 김현배소장 강연
      북한 비핵화는 정상화 과정 초기 아닌 마무리 단계서 가능 “통일 됐을 때 북한주민들에 복음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독일통일 31주년을 맞아 ‘베를린 역사와 통일연구소’(소장=김현배목사·사진)가 주최한 기념세미나 둘째 강연이 지난달 18일 베를린비전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김현배소장이 「독일통일의 교훈과 한반도 통일 준비」란 주제로 강의했다. 김소장은 먼저 동서독으로 분단된 독일 상황에 대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 미국이 지배한 서독과 소련이 지배한 동독으로 분단되었다. 또 베를린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누어졌다. 서쪽 대 동쪽,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 자율성 대 획일성의 두 세계가 충돌하면서 냉전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또 동서독의 경제적 차이를 설명하며 “당시 서독 인구는 6,500만 명, 동독은 1,700만 명이었다.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면서 경제적으로 번영한 반면에, 동독은 경제가 무너지면서 삶이 어려워졌다. 기본적인 끼니 걱정은 없었지만 생필품은 물론 TV 한 대 사기도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소장은 동독이 장벽을 설치한 이유에 대해 “동독 주민들의 마음속에는 불만이 쌓이면서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커져갔다. 결국 서독으로 탈출을 시도했다”며, “1961년 8월 13일, 동독은 155km에 달하는 가시철조망을 걷어내고 벽돌로 베를린장벽을 세웠다. 장벽의 높이는 2.50미터-3미터의 높은 벽이었다. 장벽은 정부의 독재를 숨기기 위한 수단이었다. 억압의 상징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서독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독일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김소장은 “1969년 서독총리 빌리 브란트는 통일정책인 동방정책을 발표했다. 즉 ‘접근을 통한 변화’이다. 우리나라의 햇빛 정책과 비슷한 맥락이다”며, “동방정책 핵심내용은 이산가족 상호방문, 통신의 교환, 독일교회 상호 방문이다. 동방정책으로 동독과 폴란드, 소련과의 화해와 평화적인 관계를 추진했다. 또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빌리 브란트의 비전과 용기가 탁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소장은 “우리도 현 상황(분단)을 인정하는 것이 정상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다.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변화의 밑거름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북한의 비핵화는 정상화 과정의 초기가 아닌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야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김소장은 독일교회와 크리스천들의 역할에 대해 “서독교회는 동독교회와 자매결연 맺고, 콘퍼런스를 개최하여 동독 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했다. 서독 학생회는 동독 학생회와의 자매결연을 통해 교류의 폭을 넓혀가면서 두 분단된 국가가 한발씩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했다”며, “독일개신교연합회(EKD)는 1년 예산의 40%를 동독 교회를 위해 사용했고, 서독교회 신학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동독을 방문하여 위로해 주었고, 사랑의 편지를 쓰고, 여러 물품들을 선물로 보냈다. 자동차도 선물했다. 즉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했다”고 강조했다. 김소장은 동독에서의 대규모의 촛불 시위에 대해 “1989년 10월 9일 라이프치히에서 7만 명의 시민들이 평화시위에 참여했다”며,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는 성난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여행 자유화 조치를 발표했다. 공산당 대변인 권터 샤보브스키는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즉시’라고 말했다. 이것은 큰 실수였다. ‘동독이 국경을 개방했다’는 방송국의 긴급 뉴스가 전파를 탔다. 베를린 장벽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합법적으로 통일 국가가 되었다”고 전했다.   김소장은 끝으로 한반도 통일을 위한 준비에 대해 “독일통일은 독일인들의 축제였지만, 한반도의 복음통일은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인내하며 기도해야 한다”며,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잘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통일을 원해야 한다. 같은 민족이라는 공감대가 통일의 필요조건이다. 복음통일을 위한 영역별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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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1
  • 정성구박사 저서, 독일어와 불어로 번역
    카이퍼에 대한 한국어 저서를 독일어와 불어로 번역해 유럽에 소개 총신대 총장을 역임한 정성구(79) 총신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한국어 저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의 독일어판과 프랑스어판을 각각 출간해 이를 기념하는 번역출판 감사예배를 드렸다.   정박사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를 배출한 독일과 장 칼뱅을 낳은 프랑스 현지에 자유주의에 맞서 하나님 주권을 강조한 카이퍼의 사상을 거꾸로 소개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아브라함 카이퍼는 네덜란드의 총리를 지낸 목회자이자 신학자로 교육자와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신칼뱅주의 운동을 주창했고 인간 중심 세계관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전환을 강조했다. 나의 책 독일어판 번역은 40년간 독일 선교사로 사역하는 권누가 목사가 맡았고, 프랑스어판은 역시 30년째 파리에서 사역하며 칼뱅수양관을 운영하는 최마가 박사가 담당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제1부 아브라함 카이퍼의 생애에는 그의 신앙과 인격형성, 위대한 목회자 카이퍼, 칼빈주의 대학의 설립자 카이퍼, 교회의 개혁자 카이퍼, 교육의 개혁자 카이퍼, 기독교 정치가 카이퍼, 다양한 저술가 카이퍼, 천재적 저널리스트 카이퍼, 사회의 개혁자 카이퍼를 다루고 있다”고 했다.   또 “제2부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에는 카이퍼의 설교론, 카이퍼의 교회론, 카이퍼의 성령론, 카이퍼의 영역주권, 카이퍼의 칼빈주의적 기독교세계관, 카이퍼의 하나님 중심의 신학, 카이퍼의 구원론, 카이퍼의 특별은총론, 카이퍼의 일반은총론과 문화, 카이퍼의 선교론, 카이퍼의 경건론을 다루고 있다”고 전했다.   정박사는 “이 책은 어떤 특정한 사람보다는 신학자, 목회자, 평신도, 대학생 등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담 없이 읽고 영적인 통찰력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했다. 필자의 간절한 소망은 주의 나라와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한 생을 바친 카이퍼의 사상과 삶이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커다란 영적인 도전이 되기를 바랄뿐이다”라고 밝혔다.   김영한 기독학술원장은 독일어판 서평을 통해 “한국 보수주의 신학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 카이퍼”라며, “국가가 교회의 영역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하나님 영역 주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수영 전 장신대 교수는 프랑스어판 평가에서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고 번역하는 순간 새로운 작품이 된다”며, “모국어 사용자가 아닌 수준에서 프랑스어 번역도 나쁘지 않았다”고 전했다. 황우여 전 부총리, 이재서 총신대 총장 등이 참석해 축사했다.   저자 정성구박사는 건국대학교 영문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대학원을 거쳐 화란 암스텔담 자유대학교와 제네바대학교 등에서 학위를 받았다. 이후 총신대학교와 대신대학교에서 총장과 대학원장을 지냈다. 총신대와 대신대에서 40년 동안 칼뱅주의와 실천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1985년 한국칼빈주의연구원을 세워 칼뱅주의 신앙운동에 힘써 왔다.   정박사는 “일생 중에 한국교회 앞에 감히 내어놓을 것이 하나있다면 그것은 내가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 바쳐 세운 한국 칼빈주의 연구원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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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2021-11-24
  • 창조론적 종말론-21
       “천년왕국”은 있는 것인가?   “천년왕국”설이 현대 기독교 사회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천년왕국”설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차원을 넘어 기독교 신앙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20장 1-7절 사이에서 “천년왕국”설의 기간을 표현하는 “천 년”이라는 말은 6회 나오는데, 3회는 사탄에게, 3회는 “첫째 부활”한 자들에게 나눠 쓰이고 있다. 그 가운데 “천 년 동안”이라는 말이 두 번 있는데, 그 말 역시 사탄과 첫째 부활한 자들에게 각각 한 번씩 쓰였다. 그 말들이 쓰인 곳을 잘 살펴보면, 무저갱과 하늘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 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저갱에서 “천 년 동안”은 사탄이 그리스도에게 죽임을 당하도록 모략한 죄에 대한 형벌의 시간이고, 하늘에서의 “천 년 동안”은 하나님이 그와 그리스도의 증언 때문에 사탄의 무리에게 목 베임을 당한 자들에게 “첫째 부활”로 보상하시는 시간이다.     그 “천년 동안”은 하나님이 사탄에게는 형벌을, 그리스도와 죽임을 당한 성도들에게는 하늘에서 “왕 노릇”하는 보상을 동일한 시간 동안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처분하신 것은 공의의 실행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 “천 년”은 땅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하나님의 카이로스적 시간이다. 그 “천 년 동안”이 하늘과 무저갱에서 동시에 차는 때에 사탄이 풀려난다. 하늘과 무저갱에서 그 “천 년 동안” 땅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것이나, 사탄의 짐승들이 성도들을 미혹하고, 박해하고, 심지어는 죽이기도 한다. 땅에서 그 “천 년 동안”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수가 차기까지”이다. 그 “천 년 동안” 땅에서 사탄의 온갖 미혹과 환난을 이겨낸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책 심판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상받는다.      요한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계시가 위와 같이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땅에서 “천년왕국”설이 크게 세 가지 부류로 주장되고 있다. “천년왕국”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에 근거한다. 첫째, ‘전천년기설’은 재림하신 그리스도가 “천년왕국”을 통치하신 뒤에 성도들이 사탄의 무리에게 환난을 당하고, 풀려난 사탄과 ‘아마겟돈’ 전쟁까지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전천년기설’은 재림하신 그리스도의 “천 년 동안” 통치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 않는가? 둘째, ‘후천년기설’은 그리스도가 통치하신 “천년왕국”에 이어서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나님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생명책 심판이 왜 필요하다는 것인가?. 그리스도는 ‘아마겟돈’ 전쟁 때에 재림하셔서 사탄과 그의 무리를 멸망시키고, 곧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다. 셋째, ‘무천년기설’은 그리스도의 계시에 가장 가까운 해석이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왔으나, ‘아직’(already, but not yet) 도래하지 아니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 뜻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교회가 세상을 전환하는 시대를 상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들이 그 “천 년 동안”에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환하는 시대라고 상정하는 것은 ‘무천년기설’의 약점이다. 교회와 성도들이 스스로의 낙관적 상정에 빠져 하나님의 뜻과 공의를 경시하고, 사탄의 권세를 아예 무시하는 경향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땅의 “천년왕국”을 다스린다는 계시는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초림하신 때에도, 재림하실 때에도 오시는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것뿐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와 천지 만물에 악의 근원인 사탄과 그의 무리를 허용하지 않으시고, 멸망의 처분을 하시기로 작정하셨다. 하나님은 공의에 따라 처분하시는 분이시다. 그 “천 년 동안”은 하나님 나라에 정하신 백성의 수가 채워지고, 사탄과 그의 무리에게 멸망의 심판에 필요한 죄악의 분량이 공의의 요건을 충족하는데 걸리는 ‘카이로스적 시간’이라고 보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에 거주할 그의 백성을 가려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 신학/선교/해외
    • 신학
    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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