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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5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알파와 오메가”의 계시   성경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한 곳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에 있다(21:1).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 하나님”이시며, “알파와 오메가”(ΑΩ)이시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밝히고 있다. ΑΩ는 “전에 죽었었”으나,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1:18). “음부의 열쇠”는 그리스 신화의 신 하데스(Hades, ᾍδης)가 가진 것이다. 그러나 ΑΩ는 그 열쇠를 그의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가 우주만물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셨다. 요한은 ΑΩ가 계시를 주시면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1:19)는 명령에 따라 계시록을 썼다.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ΑΩ가 요한에게 계시하신 내용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면서 읽어야 한다. ΑΩ는 1:20에서 “네가 본 것”을 부연해서 설명하신다. ΑΩ에 의하면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이고,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일곱 별의 비밀”이라는 말이다. 일곱 교회의 사자는 이제 요한이 일곱 교회에 보내는 ΑΩ의 편지를 전달받는 천사들(αγγελοι)이다.   “지금 있는 일”은 2:1에서 요한이 ΑΩ의 말씀을 듣고 에베소교회의 천사에게 편지를 쓰는 일부터 시작한다. “일곱 별의 비밀”은 일곱 교회의 일곱 천사들이 받은 편지 속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편지의 내용을 보면, 각 교회의 “지금 있는 일”만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될 일”도 서술하고 있다. “일곱 별의 비밀”을 알려면, 각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과 일치하는 상황이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아야 한다. 따라서 요한이 편지를 쓰는 일은 “지금 있는 일”이지만, 그 내용은 “장차 될 일”에까지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ΑΩ가 보내는 편지는 그 당시 일곱 교회에게 “지금 있는 일”을 넘어 세계 각 교회에게 “장차 될 일”을 알려주고 대비하라는 메시지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2-3장에 걸쳐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쓰기가 끝나자, 요한은 하늘로 들려 올라간다. 하늘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하늘의 광경을 4-5장에 걸쳐 서술한다. “지금 있는 일”을 대개 여기까지로 한정된다. 그러나 6장부터 요한이 보는 ‘일곱 인 떼기’와 ‘일곱 나팔 불기’, 그리고 ‘일곱 대접 쏟기’ 등의 사건들도 요한에게 “지금 있는 일”이다. 요한에게 “장차 될 일”은 요한이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환상 속에 있다. 요한에게 “장차 될 일”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야 끝난다.   요한계시록을 서술하는 형식은 구약성경의 묵시문학적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장차 될 일”에 등장하는 괴물들과 환상들, 그것들의 상징적 의미, 그리고 그 사건들의 날과 때의 시간적 순서에 대한 이해는 서로 다르다. 특히 요한이 환상에서 보고 들은 “장차 될 일”과 실제로 인간들의 세상에서 진행되는 역사적 사건을 시간적으로 대비(對比)하고 특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스도는 이미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마25:13)한다고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적 틀에 갇혀 사는 인간이 “장차 될 일”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했다거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거짓말이다. 누구든지 “두루마리의 예언”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읽는 자는, 그것에 “더하”거나 “제하”는 오만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자칫 실수로 재앙을 초래하거나,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에서 제하여 버림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22:18-19).   요한계시록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주의 날에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는 곳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 행위를 따라”서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ΑΩ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20:11-12)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자기 행위”의 데이터(data)를 입력한 “생명책”에서 자기의 ‘머리털 하나’라도 감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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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4
  • [선교사 통신] 경제 붕괴로 생계형 노동 증가
      코로나 사태로 전세계가 힘겨운 싸움을 하는 중에 L국은 매일 거의 1500-2000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L국에서 전국적으로 록다운을 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확진자 비율이 많은 곳 중심으로 봉쇄 조치를 취하는데 사랑의 하우스가 있는 지역은 그 나마 자유로 와서(?) 3개 클래스를 소규모로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아이들 교육을 지난 10 월 중순부터 재개되었다.   작년 10월부터 경제 위기, 베이루트 폭발사고, 코로나 등으로 정말 재생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다. 조만 간에 새 정부가 구성이 되어서 돌파 해법을 찾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는 상황이고L국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에 예수 복음이 소망 임을 더 확신하고 전도 사역이 더 왕성히 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한 점이다.   L국이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많은 나라이고 감사 꺼리도 참으로 풍성하다. 용감하게 지혜롭게, 신속하게 선교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이 나라와 난민들, 사랑의 하우스를 보면은 기분이 참 좋아진다.   하지만 언제까지 난민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인지 매우 강도 높은 말씀, 기도,예배 훈련을 무섭게 강화하면서 하나님을 철저히 바라보는 방식으로 사역이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와 L국 경제 붕괴로 인한 실업률 상승, 물가 상승 등의 영향을 난민들이 겪으면서 우리 학교에 와야 하는 아이들이 생계형 노동을 하러 어쩔 수 없이 나가는 모습에 마음이 너무 어렵다.   지난 4월부터 페이스북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서 매일 수많은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나누고 있다. 일대일 대화로 그들과 대화하면서 전도를 하는데 주께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여시고 준비시키셔서 벌써 38 명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온라인으로 성경공부에 참여하면서 신앙을 키워나가고 있다.   계속해서 수십 명의 무슬림과 현재 전도 대화를 진행 중이다. 감사한 것은 그들과 함께 사랑의 하우스에서 현장 예배(지금은 소수만) 할 때온라인 Zoom 을 동시에 해서 예배를 하는데 너무나 감격적인 시간이다.   이러한 시도는 중동 여러 나라와 터키,유럽, 미국, 한국에서 일하시는 선교사들에게 그간의 노하우, 경험,기술을 전수해 주는 일을 겸해서 감당하고 있다. 작년 5월에 사랑의 하우스는 새로운 땅을 임대해서 공사를 했다.   L국 경제위기, 코로나 사태 그리고 건축에 관련된 사안들 때문에 지연되다 지난 9월에 모든 시설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간 정말 힘든 일이 많아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계속 버틸 수 있는 힘주시고 사랑의 하우스가 사용되어지는 것에 감격하고 있다. 예년 같은 여러 방문팀이 와서 함께 사역할텐데, 코로나 사태로 아쉬움이 많다. /정바울 중동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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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7
  • 세계선교연대 포럼과 기관 이·취임식
      세계선교연대(대표=최요한목사)와 세계선교연대총회는 지난 7일 서울 명동 프린스호텔 별관 컨벤션홀에서 제 89차 세계선교연대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선교사(14개국 23명) △이도재,박영자(우간다) △장병욱(인도) △김보미,박영애(일본) △송용자(태국) △유바울, 이훈(미국) △전권재(멕시코) △안태롱,김효은(인니) △곽명옥(GMP) △김호동,배점선(불가리아) △정 광(베트남), 유진숙(탄자니아) △정안나,장경순(러시아) △김경애(중국) △김정옥,박영순(필리핀) △김야엘(이스라엘) 등 각국 선교사들이 참여하여 의미를 더했다.   최요한목사는 이날 포럼 의미에 대해 “한국 기독교 선교역사에 신기원이라 할 수 있는 선교사가 총회장으로 취임하는 귀한 날이다”라며, “세계선교연대 총회가 선교사가 총회장으로 취임하는 역사적인 이날을 기념하며 기도로 중보해달라”고 전했다.    또한 “중국에서 만 8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신학교 53개를 세웠는데, 이번 코로나 중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되어 중국 제자들이 졸업식을 했다”면서, “오직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역사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을 보니 감사하다. 특히 국제선교신문과 명동출판사 사역을 서울명동교회의 두 장로님에게 이양하면서 짐을 맡겨드리니 홀가분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감사예배에서 「한국사 세계사인가?」란 제목으로 설교한 민경배목사(전 백석대석좌교수)는 “한국의 선교역사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우리는 이러한 선교사적 역사 앞에 당당하게 앞서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세계선교연대 총회 총회장과 국제선교신문사 사장, 명동출판사 사장 이·취임식도 함께 열렸다. 취임식은 세계선교연대 신임총회장 이도재목사와 국제선교신문사 신임사장 김주덕장로,명동출판사 신임사장에 취임한 한희성장로가 각각 소감과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도재총회장은 “십자가상에서 내 죄를 대신하여 피 흘리고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고는 있는데, 흙탕물 속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못 뛰어내리는 저를 밀어주신 여러분과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임사를 전한 박용옥목사는 “변함없이 선교하는 한 길로 걸어가겠다”며 “헌신해주신 여러 선교사님, 목사님, 대표님들에게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세선연과 세선연 총회를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나타내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김주덕사장은 “세선연 기관지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선교사들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선교사님들의 희로애락과 하나님이 역사하신 선교현장을 생생히 전하며 복음을 전하는 견실한 언론사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희성사장은 “문서선교사로서 열심과 충성을 다하여 세계 선교 발전에 이바지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겠다”며 “이 모든 일은 여러분의 기도 없이 불가능한데, 위로는 하나님을 더욱 섬기고 아래로는 교회와 성도님들을 더욱 사랑하며 섬기겠다”고 강조했다.   동 선교연대 대표 최요한목사가 인도한 취임식은 박영애선교사(대마도)의 기도와 오세문장로(빅뱅그룹회장)의 특송, 박용옥목사의 설교, 이선구목사(상임고문)의 공로패·취임패 수여, 김원남목사(예장선교총회장)의 권면, 이선구목사와 김영진장로(전 농림부장관), 이면재변호사(전 대학총장), 신용호목사(지부협대표회장)가 축사했다.    이선구목사는 “이름도 빛도 없이 지구촌의 가장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섬기는 세선연의 사역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것이다”며, “장로와 목회자가 노사분쟁 없이 서로 섬겨 한 마음으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길 기원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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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7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XIII. 성결을 그리스도인 삶의 주제로 부각: 성령의 인격적 사역과 그리스도인의 성화 강조   1.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패커는 성령의 사역과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저작들을 남겼다. 20세기에 흥왕한 오순절 운동(Pentecostal movement)과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이 성령 본연의 사역을 은사의 나타남으로 왜곡하고 있었다. 이 때, 패커는 성령 사역의 본질이 바로 그리스도인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것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성화 과정에서 성령과 협력하는 거룩한 책임을 다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패커는 1967년의 저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에서 성령님의 내주하심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야말로 복음이 제시하는 가장 크고 으뜸 되는 선물이시다.”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이미 부족한 것이 없으신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성령 세례'를 그리스도께서 소유로 삼아 인치신 사람들이 거듭나 구원을 받는 순간에 받는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동일시한다."(James Innell Packer & Alan Marshall Stibbs,The Spirit Within You: The Church's Neglected Possession, Hodder and Stoughton, 1967; 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생명의말씀사, 2010.27). 이러한 저자의 견해는 로이드 존스의 후기 성령론과 다른 입장에 서 있으며 전형적인 개혁주의적 성령론의 입장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패커는 성령의 사역을 성경 완성과 연결시키고 성경완성 후에는 특별 사역이 필요없게되었다고 본다: "사도들의 특별한 사역이 끝나고 신약 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그런 현상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James Innell Packer & Alan Marshall Stibbs,『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60.)패커는 "그런 현상들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했다는 사실을 초자연적으로 입증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예언의 은사는 신약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패커는 다른 은사들 역시 신약성경의 완성 이후에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패커의 은사 중지론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커는 전도나 성화를 위해 성령 안에서 신자의 능동적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신자들이 흔히 범하는 또 다른 잘못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행동을 취하실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인간이 먼저 행동을 개시할 경우에는 자칫 자아를 의지하려는 육신의 욕구에 치우치기 쉽다고 믿는다. 하지만 신약 서신은 우리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새로운 행동을 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거듭 강조한다. 하나님은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우리가 행동해야만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이 우리의 경험 속에서 온전히 실현된다."(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31)   패커는 성령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참 자유를 강조한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참 자유는 육신의 정욕을 극복하고 거룩한 삶을 향해 매진하는 자유를 뜻한다. 이 자유는 우리의 협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자동차를 모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자 책임이다. 자동차를 우리를 향해 모든 것은 우리의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에는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덕분에 가능해졌다."(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94)   패커는 성령 안에서 죄를 극복하기 위하여 내주하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죄를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는 신자들 가운데 이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자신의 본성이 연약한 탓에 넘어지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려는 의지를 무가치한 육신에서 나오는 힘으로 여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어 마음을 움직여 주시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올바른 길을 향해 나아가려면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존재와 능력을 온전히 의식하고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해야 한다."(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95.)   패커는 오늘날 개혁교회가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소홀히 여기는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 성령은 이미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는 또 다른 성령님을 구한다. 성령 체험을 일부 교회들이 추구하는 단순한 광적인 현상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이런저런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는 오순절 은사 운동은 부분적으로는 제도화된 20세기 교회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했다. 패커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성령 사역의 역동적 개념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패커는 성령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오늘날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짓는 한편, 오순절 은사 운동이 야기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명확히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패커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자신 특유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잘못 오해되고 있는 성령 사역의 문제점을 파헤치며, 그에 대한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패커는 성령의 임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시된 복음의 핵심이자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공통으로 주어지는 기업(基業)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2. 성령의 인도함을 받음   패커의 초기 논문은 케직 사경회가 지향하는 성령세례와 소위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주제에 대해 성경적인 입장을 잘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는 후에 『성령을 아는 지식』에서 더 폭 넓게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성령을 아는 지식』(Keeping In With the Spirit)은 은사주의 운동에 대한 패커의 독특한 견해와 함께 케직(Keswick) 사경회의 성화론에 대한 논쟁을 심도 깊게 다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패커 자신의 회심 이후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 케직 사경회의 성화론은 지속적으로 죄에 대하여 승리하는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헌신할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케직의 가르침은 패커에게 깊은 고뇌와 좌절을 경험하게 하였다. 패커는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의 『죄 죽이기』(The Mortification of Sin)라는 책을 읽으면서 케직의 수동적 성화론에서 벗어난다.   패커는 케직의 가르침이 수동성을 명하는 정적주의(靜寂主義)로서 성결을 성취하는 문제를 정신적이고 영적인 테크닉의 문제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패커가 1955년 성화에 관한 케직의 견해를 신랄하게 공격하였던 논조와 30여년의 세월이 지나 쓴 『성령을 아는 지식』에서의 케직에 대한 논조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있곤 한다. 패커는 『성령을 아는 지식』에서 케직의 가르침에 대하여 좀더 협조적이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즉 그 운동이 가졌던 의도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여러 가지 점에서 그 가르침을 교정하는 방식으로 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패커는 성령을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알고자 한다. 철저히 성경말씀을 근거로 시종일관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하여 성경에 가르침에 따라 믿음으로 칭의받은 우리는 성령 안에서 계속되는 성화를 추구하지만, 이 세상에서 완전에 이를 수 없음을 성경이 증거하며 역사가 증거한다는 것을 잘 제시한다. 그리하여 패커는 소위 완전주의(perfectionism)에 대한 성경적 비판을 잘 제시하여 가장 온전한 성경적 성령론을 잘 드러내고 있다.   패커는 2000년 인터뷰에서 1960년대 영국의 오순절 운동을 복음주의의 한 특징으로 보았다고 피력하고 있다: “은사주의 운동이 1963년 영국의 복음주의 계열을 휩쓸고 있었다. 은사운동 스타일의 찬양대, 기타로 반주하는 복음송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역자라고 강조하는 것이 은사운동의 특징이었다. 어딜가나 이런 것들이 당시 영국 복음주의 계의 특징이었다. 영국 전역에서 복음주의자들이 방언을 말하거나 신유를 행하려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것들이 당시 영국 복음주의계의 특징이었고 나는 그것이 옳다고 본다.”(제임스 패커 인터뷰 1, 「소금과 빛」, 2000년 7월호 특집. 두란노서원, https://cafe.naver.com/ilumok/16)   패커는 영국 IVP로부터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에 관해 삶과 성령으로 주제로 책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는 은사운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싶어 집필을 하고자 하였다. 패커는 특히 존 스타트 나 딕 루카스처럼 은사운동을 아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피력하고 있다: “영국의 복음주의자들 중의 일부인 존 스타트와 딕 루카스는 오순절 운동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나는 저들처럼 매우 부정적이지 않았다. 나는 오순절 운동이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오순절 운동에는 잘못된 점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표적과 기적이 도를 넘어서서 비성경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곧 방언, 방언 해석, 신유와 예언 등에 대해 그렇다. 그래서 오순절 운동의 본질을 지지하면서도 후자에 대한 것은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오순절 은사운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시하기 위하여 『성령을 아는 지식』(Keeping in Step with the Spirit)을 썼다.”(제임스 패커 인터뷰 1, 「소금과 빛」, 2000년 7월호 특집. 두란노서원, https://cafe.naver.com/ilumok/16)다른 개혁신학자들과는 다르게 패커는 하나님이 오순절 내지 은사운동을 현대적 상황 속에서 사용하시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것의 결점과 약점 그리고 방향을 지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패커는 성령님 안에서의 삶(Life in the Spirit)을 강조하며 결국 성경을 중심으로 사는 삶을 보이면서, 특히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나가는 삶의 실제를 잘 제시하고 가르쳐 준다. 패커는 복음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영성을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 패커는 참되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철저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즉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주 강조했다. 패커가 은사운동의 지나친 표적 추구를 비판한 것은 올바른 태도이며, 그렇다고 그가 성령의 은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성령과의 교통 가운데서 성결의 삶을 강조한 것은 성령 사역에 대한 그의 균형잡힌 태도를 보여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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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7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4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받을 큰 약속: 영생   현대사회는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세상의 종말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조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말세는 성경에서 거룩한 선지자들에 의하여 줄기차게 경고해왔던 문제이다. 말세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백성을 인도하는 교회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곧 땅과 생물을 다스리 일(창1:28)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동안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자들이 그 일을 함으로써 창조질서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들에 의하여 하나님이 처음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목적은 묻혀버리고,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은 추방되었다. 베드로는 이에 대하여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말하기를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벧후3:3)했다고 말했다.   베드로는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벧후3:10)라고 경고하면서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니. 그것을 바라보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의 처음 창조를 부정하는 자들이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라는 베드로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세상에 종말을 오게 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자들의 안일과 무책임이 가장 큰 이유라고 자책할 수밖에 없다.   베드로는 주 하나님의 날이 임할 때까지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말했다(벧후3:13-15). 베드로가 말한 “속에 있는 소망”은 곧 “영혼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것은 영생의 소망이다. 현대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이 “알파요 오메가”이신 주 하나님의 처음 창조와 새 창조를 똑바로 알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창조를 똑바로 알려줄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구약시대의 이사야가 처음 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말하고 있으나, 베드로는 구약시대를 개혁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사야와 다른 관점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베드로는 인간이 누구나 그러하듯이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을 소망하는 자라면, 예수를 보지 못했어도 그를 믿고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벧전1:9). 베드로에 의하면 모든 일이 드러나는 주의 날에 영혼의 구원을 받을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 앞에 섰을 때, 점도 없고 흠도 없어야 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고, 그의 말씀을 따라 전도에 나섰다가 로마에서 잡혀 순교했다. 그런 만큼 베드로의 말은 진실하다. 베드로는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자에게 주의할 일 두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니”(벧후3:8), 참음으로 주의 날을 기다리라. 둘째,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하는 것처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지 말라(벧후3:16).   성경에서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은 주의 날과 때이다. 이에 대해서는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24:36, 막13:32)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큰 약속”을 받아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고 했다. 그런 소망을 가진 자는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해야 한다(벧후1:4-7). 베드로에 의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1:8)에 넉넉히 필요한 것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3:18)는 것이다.  
    • 신학/선교
    • 신학
    2020-11-13
  •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 조명-33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가 영생할 수 있을까?   하늘과 땅과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의 첫 장만 읽어도 알게 되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65:17)고 선포하셨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는 말은 옛 하늘과 옛 땅을 버린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에 대해 구약에서는 이사야서가 기록하고 있고, 신약에서는 베드로후서와 요한계시록이 기록했다.    그동안 유대교인들은 이사야서를 읽고,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기독교를 창설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새로 창조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할 수 있다고 계시하셨다. 이사야서만 읽은 유대교인도, 세 권을 다 읽을 수 있는 기독교인도, 모두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날에 자신은 그곳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유대교는 기독교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쨌든 영생은 무신론적 과학의 한계를 초월하여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 하나님의 창조 권능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사야서를 쓴 이사야는 구약시대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유다왕국 10대 웃시야 왕부터 13대 히스기야 왕조까지 활동했다. 이사야에 의하면 하늘과 땅과 인간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1:2)고 한탄하셨다. 하나님은 처음 인간을 창조하신 때에 오복과 함께,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창조목적을 알려주셨다(창1:28). 하나님의 한탄은 그가 처음 창조하신 인간과 그 자손들을 자식으로 양육하셨으나, 그들이 창조주를 거역하는 데 대한 분노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를 거역했던 처음 인간을 심판하여 땅을 저주하신 적도 있었고, 죄악에 빠졌던 그 자손들을 심판하여 노 홍수로 멸절하신 기록도 있다. 그 뒤에 인간은 다시 번성했지만, 하나님의 첫 말씀인 창조목적은 잊어버리고 패역의 길을 걸었다.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한다(9:16).   하나님은 죄악에 빠진 자식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을 내서 “만민의 기치”로 세우실 것이나(11:10), 땅의 주민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24:5)으므로 공허하고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이사야에 의하면 하나님은 환난을 겪으면서도 죽기까지 견디는 그의 백성들에게 메시아가 종의 모습으로 정의를 베풀 것이라고 밝히셨다(42:1).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땅에 하나님의 종의 모습으로 오신 메시아가 예수이시다. 그러나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53:5)다. 하나님을 거역한 자식들과 그 자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죽였다. 하나님은 예수와 함께 환난을 당한 자들을 그의 백성으로 택하신다. 이사야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까지 대부분 성취된 것으로 보인다. 이사야에 의하면 하나님은 앞으로도 패역한 자들의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실 것이다(65:7).   하나님은 그가 택한 백성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고 선포하셨다(66:22).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에게 동일한 계시를 주시면서 모든 인간들은 마지막 날에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계20:12). 그렇다면 기독교인의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회개”에서부터 믿음-사랑-소망의 “자기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교회는 신자들을 인도하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자기 행위를 초등학교의 수행평가쯤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에 따라서 교회는 어느덧 이사야가 지적한 것처럼 ‘패역한 자식’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 신학/선교
    • 신학
    2020-11-13
  • 데스타여행사 에티오피아 성지순례
      역동적인 예배를 경험함으로 새로운 도전을 받게될 것 전통 간직한 원시부족들의 신비로운 모습 확인할 수도   데스타여행사(대표=송정권)는 에티오피아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통해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전통에 관해 소개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선교사들은 에티오피아에서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쳐왔다. 먼저 루터교 전통의 교회들이 선도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했고, 이내 장로교나 침례교 등의 선교사들도 에티오피아 선교에 참여했다. 오랫동안 에티오피아정교회가 그 터를 잡고 있던 북쪽 지방 대신에 개신교 선교사들은 남부와 서부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하면서 수도 아디스아바바가 있는 중앙으로까지 진출했다. 이렇게 선교사들이 노력한 결과 에티오피에의 개신교 인구는 현재 전체 인구의 약 20% 가량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내에서 개신교도의 신앙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다스리던 1936년부터 5년 동안에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모두 추방되기도 했고,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혹독한 핍박을 받았다. 추방되던 대다수의 선교사들은 에티오피아의 교회가 무너지고 사라질 것이라 염려했지만 1941년 이탈리아가 철수한 이후 에티오피아 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엄청난 성장을 한 모습으로 에티오피아에 돌아온 선교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1974년, 에티오피아 군인들 중 일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폐위시키고 공산정부를 세웠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선교사들이 추방되었는데, 1991년 공산정권이 무너진 이후 에티오피아 교회는 더욱 부흥하고 성숙된 모습으로 세계 교회 앞에 당당히 나타나기도 했다.   이렇듯 모든 어려움들을 이기고 현재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개혁 전통 교회들은 젊은이들이 넘쳐나며 급속도로 커가고 있다. 에티오피아 교회에서 에티오피아 교인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면 그 시간은 3~4시간으로 비교적 길지만, 생기 가득하고 역동적인 예배를 경험함으로 새롭고도 강력한 도전을 받을 것이다.   한편 동 여행사는 에티오피아 성지순례를 현지 관광사업과 연계시키고 있다. 에티오피아에는 남서부 지역의 ‘오모강’을 따라 현대 문명과 거의 접촉하지 않은 다양한 원시부족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의 지구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외부에 노출되어 서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지만, 에티오피아의 남서부에 살면서 전통을 간직한 원시부족은 자신들의 신비스런 모습을 많이 간직한 채로 살고 있다. 입술 혹은 귀에 구멍을 내고 큰 접시를 집어넣고 사는 사람들, 화려한 치장을 한 원시부족 등 현대문명에 노출되지 않은 다양한 원시부족을 에티오피아에서 만날 수 있다.   에티오피아를 관통하는 동아프리카지구대는 엄청난 단층 지역을 형성하고, 양 옆으로 절벽을 만들고 요철 모양의 장대한 지형을 형성한다. 이 단층 지역 중 다나킬은 해발 고도가 마이너스 100미터 이하에 위치하며, 다나킬 사막과 함몰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화산과 용암을 분출한다. 그 모양이 특이하여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을 연출하고, 외계 혹성을 연상케도 한다. 그 북쪽에 있는 활화산 에르타알레는 해발고도가 600미터 정도이며 육안으로 용암을 볼 수 있는 지구상의 몇 안 되는 장소이다. 이러한 이색적인 테마를 다양하게 가지고 있는 나라 에티오피아는 관광거리가 많으며, 세계 유수의 관광지를 다녀본 사람들에게 마지막 남은 매력적인 여행지역이다.
    • 신학/선교
    • 해외선교
    2020-11-05
  • 김영한박사의 신학논단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XI. 자유주의와 현대주의 신학의 도전 속에서 보수적 복음주의 가치를 옹호   1. 자유주의와 현대주의 신학의 도전 속에서 정통 기독교 교리 변호   패커가 영국 옥스포드에서 공부하고, 교수사역을 하던 당시에는 교계와 신학계는 근본주의, 복음주의, 자유주의로 구분되고 있었다. 영국 복음주의는 반가톨릭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인 태도와 성향을 나타내었다. 영국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근본주의와 더불어 반지성주의와 반계몽주의로 매도(罵倒)되었고, 영국의 신학교와 교회전반적인 신학풍조는 진화론과 고등비평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사상이 대세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패커는 청교도적이고 복음주의 전통에 서서 진화론과 고등비평에 대항하면서 성경적 진리를 변호하였다. 크로스웨이 부대표 저스틴 테일러(Justin Taylor)는 「복음주의 연합」(The Gospel Coalition, TGC)에 기고한 글을 통해 패커에 대하여 다음같이 평가했다: “제임스 패커 박사는 자신을 ‘사람들을 옛 진리와 지혜의 길로 되돌아가게 하는 목소리’다.” “그의 전 생애는 ‘새로운 것이 더 진실하고, 최근의 것만이 괜찮고, 모든 변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모든 최신 단어는 그 주제에 대한 마지막 단어로 환영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2000년 4월 26일 오후2시 캐나다 리전트칼리지에서 패커에게서 신학을 배운 그의 제자요 한인 교포 1.5세인 인터양 목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은퇴하고 명예교수로 있는 패커는 자신이 젊은 시절인 15세 때 격었던 유니테리안파 목사와의 논쟁을 소개하였다: “열여섯살에 나는 참된 기독교가 무엇인가 진지한 질문에 빠졌다. 그 이유는 유니테리안파 목사들과의 논쟁 때문이었다...유니테리안주의의 교리는 예수의 도덕적 가르침이 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르침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훌륭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삼위일체가 아니라 단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불합리성은 왜 예수의 가르침은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신약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나는 열 다섯살에 그것을 깨달았고, 유니테리안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제임스 패커 인터뷰 1, 「소금과 빛」, 2000년 7월호 특집. 두란노서원, https://cafe.naver.com/ilumok/16)   패커는 참된 기독교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복음주의자들의 책들을 읽으면서 정통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옥스포드대에 들어가서 정통 기독교 신앙을 인격적으로 내면화하는 회심을 경험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참된 기독교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독서했다. 나는 C.S. 루이스를 비롯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책을 읽었는데 그 저자들이 다 복음주의자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자란 영국 로스터의 공공 도서관에서 찾은 책들을 읽었다. 옥스포드에 입학했을 때 나는 정통 신앙을 가진 신자였다. 나는 삼위일체, 성육신, 예수의 부활 등 사도신경에 나타난 정통교리를 믿었고 옹호했다. 나는 그것이 진리라고 확신했다. 다만 그 당시에 내게 없었던 것은 구원자 예수와의 인격적 관계였다. 그러다가 옥스포드에 입학한 후 2주가 지났을 때 그런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옥스포드 기독인 연합예배의 말씀을 통해서였다. 이것이 나의 구원의 간증이다.”   2. “근본주의” 용어의 올바른 사용: 기독교 근본진리 믿고 수호함   2000년 4월 제자 목사와 인터뷰에서 피력한 바같이 패커는 1956년 당시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는 복음주의자들을 “근본주의”라고 비판한 것에 대하여 근본주의 진리를 변호하였다. 패커는 IVF 졸업생들의 모임에서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이 비판하는 것 같이 ”좁은 마음인가, 좁은 길인가?"(Narrow Mind or Narrow Way?)라는 강연을 하면서 근본주의 진리를 변호하였다. 이 강연이 성공하자 출간 요청에 응하여 강연 원고를 확장시켜 그의 첫 번째 책 『근본주의와 하나님 말씀』이 저술되었다고 그는 회고하였다. 패커는 근본주의 용어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근본주의란 기독교 신자는 기독교의 근본진리인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패커는 근본주의란 용어를 기독교 근본 진리를 지킴,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근본주의를 해석한다. 그는 1930년대 미국의 신근본주의의 사고방식, 해외 선교와 목회만을 가치있는 것을 여기고 반지성적이고 사회적 이슈에 무관심하며 역사적 교회와 단절하는 독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근본주의와는 결별하는 태도를 취했다 : “복음주의는 광범위한 원천에서 유래하고 있다. 한 극단은 분리주의자들, 근본주의자들 가운데 논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쪽 극단은 나를 포함해 존 스토트, 해롤드 오켕거 등이 있다. 우리는 교회가 물러받은 역사적 유산이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존재해 온 2천년 동안 역사와 우리와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복음주의가 2천년 역사와 단절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근본주의가 있는데 나는 그러한 근본주의에 반대한다.”   여기서 패커가 사용한 근본주의 용어는 오늘날 극단한 이슬람 종파나 이데올로기 집단이 선전하는 의미에서 파당적이고 혐오적이고 전투적이고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사고방식을 지칭하지 않는다. 페커가 변호하는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근본진리, 2천년 기독교의 근본 진리인 사도적 복음 진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것의 핵심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진리, 그의 신성, 부활 교리를 믿고 지키는 것이다.   현대 복음주의 좌파의 열린 유신론과 자유주의 신학의 단일신론의 도전 속에서 패커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과 기도하는 것,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했다. 그는 교회를 향해 회개와 거룩을 촉구했으며 성령 안에서의 동행, 자신의 죄와 싸우라고 말했다. 또 성경적 권위를 지키는 데 힘썼다.패커 교수는 자신을 일컬어 ‘사람들을 진리와 지혜의 오래된 길로 부르는 목소리’로 지칭했다. 그는 ‘새로울수록 진실하다’ ‘최근의 것만 괜찮다’는 식의 현대적 의식의 흐름에 역행하고 저항하는 데 일생(一生)의 삶을 바쳤다. 미국 내 보수적인 신학을 지탱하는 남침례교 신학대학원의 교수 앨버트 몰러(R. Albert Mohler Jr.)는 제임스 패커 박사에 대해 “영어를 사용하는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며 “그의 저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18세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내게 생명선이 되었다”고 말했다.   XII. 알미니안주의에 대한 칼빈주의의 대화와 협력: 개혁적 복음주의 전통 제시   1. 알미니안주의에 대한 칼빈주의의 대화와 협력   패커는 저서 『알미니우스주의』에서 전통적인 칼빈주의 입장을 독선적으로 고집하기보다는 알미니우스의 입장의 긍정적인 면을 수용하고자 하였다. 그의 저서 『알미니우스주의』는 도르트 400주년의 격에 맞지 않는 소책자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도르트 신조 작성 400주년을 맞아 ‘알미니우스주의’를 명료하게 파악한다면, 그 가치는 대작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는 알미니안주의를 배격하는 신학 자세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명료한 이해를 가진 연구자는 많지 않다. 패커는 『알미니우스주의』의 저술 목적에 대해 “칼빈주의와 알미니우스주의가 대립하는 현실에서 분열이 아닌 협력을 위한 것”이라고 제시했다. 즉 대립에서 치유, 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으로 당 짓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은 패커는 영국 국교회 저교회 신학자(Anglican Church of Canada)라는 점이다. 국교회의 저교회 그룹은 국교회(성공회) 안에 있는 좀 더 철저한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이었다. 17-18세기 청교도주의자들은 알미니우스주의에 대해 너무 철저하게 배격했다. 그런데 21세기 국교회 저교회 신학자인 패커는 알미니우스주의와 조건(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에서 협력, 통합을 제언하고 있다.   패커는 그의 저서에서 항변파 알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안 알미니우스주의를 비교했다. 알미니우스주의와 감리교의 일치와 차이를 파악하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패커는 알미니우스주의의 칭의 개념이 율법주의적 행위 개념이 있음을 제시하면서, 반청교도적·반칼빈주의적 성공회주의자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백스터주의(신율법주의), 아미랄두스주의(수정된 칼빈주의) 등 다양하게 분화된 신학 계통을 제시한다. 패커는 웨슬리를 복음적 알미니우스주의자로 분류한다. 패커의 ‘알미니우스주의’ 이해는 모든 알미니우스와 연결된 분들을 총망라했다. 그리고 인간의 책임을 도외시하려는 칼빈주의의 편협함에 대한 보완책으로,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는 알미니우스주의의 긍정적 기능을 제시하고 있다.   2. 개혁적 복음주의   패커는 2000년 인터뷰에서 자신을 “개혁적 복음주의자” (a reformed evangelical)로 자리매김한다: "나는 내 자신이 개혁 복음주의자라고 확신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의 시작에 있어서 신학 및 그리스도인의 헌신에 있어서 개혁적 복음주의자의 위치와 관점이 기독교 역사상 주류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로마 가톨릭교회도 한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고, 개신교도 한 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개혁적 복음주의(a reformed evangelicalism)가 기독교의 주류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영적 유산을 이어 받은 신학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물러받은 기독교 유산에 대해 좀 알고 있다. 그것은 교부시대, 2,3,4,5 세기를 거쳐 중세를 지나 스콜라철학을 거쳐 동방정교회의 유산까지 이어져 왔다. 동방 정교회는 잠간 다른 점이 있긴 하나 주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받은 복음주의 유산은 루터, 칼빈 그리고 서구의 모든 개혁자들로부터 온 것이며 그것이 여러 가지 운동과 다양하게 등장한 신학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개혁적 복음주의”(a reformed evangelicalism)는 좁은 의미의 개혁파가 아니라 종교개혁 전통을 계승하는 개신교 신앙 전통을 의미하고 있다. 패커는 넓은 개혁적 복음주의에는 “복음주의 영국 국교회, 복음주의 장로교, 복음주의 침례교”도 들어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패커는 1950년대 뉴욕과 로스안젤레스의 빌리 그래이험 전도 집회의 성공을 통하여 복음주의자들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2-3억에 이르는 복음주의자들이 교단의 제한을 넘어서서 복음을 위하여 합께 협력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950년대 뉴욕에서 빌리 그래이험의 큰 집회가 열리고 로스안젤레스에서 열렸는데 두 번에 걸친 빌리 그래이험 전도사역의 성공은 복음주의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복음주의자들이 하나의 사명으로 연합하고 신학으로 연합하는 것이 각 교단에서 일하는 것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복음주의자들이 교단에 대한 관심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2-3억 사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복음주의 교회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일은 1960년대 말에 일어났고 그것이 오늘날에는 표준적인 관습과 생각이 되었다.”   패커는 2000년대 세계 기독교지도가 바뀌고 있고 아시아 선교사들이 구미지역으로 파송되는 역선교사 현상이 일어나며 세계 복음주의 신자들이 5억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피력한다: “직업 선교사가 아직도 필요하긴 하지만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는 직업선교사를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텐트 메이커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가 하면 역사가 짧은 지역의 교회에서 역사가 오랜 유럽 세계로 벌써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20세기 초보다는 다른 모습들이다. 모든 것들이 개선되고 있고 복음주의는 50년, 80년, 100년 전보다 더 강해졌다.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복음주의자들을 수적으로 증가시키셨다. 그래서 은사주의와 오순절파 사람들을 포함시킨다면(당연히 포함해야 한다) 개신교 인구들 가운데 복음주의자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다수라는 것이다. 5억 이상의 복음주의자들이 있고 자유주의자들은 많아야 2억에 불과하다. 아마도 그보다 적을 것이다.”   그리고 패커는 20세기 후반기에 복음주의자들은 단지 교회와 선교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신자의 삶을 실현하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20세기 후반부에는 복음주의 공동체 안에서 지적 삶이 회복되었고 복음주의 세계 전체에서도 선교사나 목사가 되는 것 이외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이 있다는 자각이 일어났다. 리젠트에서도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새롭게 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들을 무장시킴으로써 그들이 각 영역으로 나아가 언행이 일치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세상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게 하여 기독교 신앙으로 모든 것을 재정의하고 새롬게 하고자 한다, 온 세상의 복음주의자들이 점차 그러한 생각을 가져가고 있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패커는 교회와 선교에만 정향된 전통적 복음주의의 편협성에서 벗어나 인간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실천하는 루터와 칼빈의 성속일치론을 오늘날 복음주의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이미 19세기 후반부와 20세기초 네덜란드의 정통개혁신학자 아브라함의 신칼빈주의(neo-calvinism) 사상과 일치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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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3
  • [선교사 통신] 오키나와 종단선교 성공적 완수
      지난 여름 오키나와 성서신학교 주최로 오키나와 종단 선교가 있었다. 오키나와 최북단에서 중부까지를 하루에 평균 17-8킬로미터, 총 120여 킬로미터를 걷고, 오후에는 각 지역 교회의 전도를 돕는 훈련이다. 걷는 동안 침묵하며 오직 주님과의 교제에 집중하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취지였다.   신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메구미 자매를 격려하기 위해 곽 선교사도 함께 참석했다. 발이 부르트고 허리가 아파왔지만 자연에 가득한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깊은 기도를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오키나와 선교사로서 이 땅을 속속들이 밟으며 축복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주어진 것은 큰 특권이었다. 메구미 자매도 주님의 은혜로 힘든 훈련을 넉넉히 감당해 냈다. 오키나와의 무더운 날씨 가운데 때를 따라 구름과 비를 보내 주신 주님의 세심한 사랑 가운데, 지칠 때마다 말씀과 찬양으로 힘을 얻었다는 자매의 간증을 들으며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코로나가 진정되어 일상이 돌아왔던 오키나와는 7월 말부터 감염이 급증하여 결국 8월 한달 동안 독자적인 ‘긴급사태선언’을 했다. 하지만 관광업이 주산업인 이 곳 특성상, 주민들에게는 외출을 자제하라고 하면서도 관광객들을 막지는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9월부터 일상이 회복되었지만 10월 중순 현재 확진자 수가 2천 9백 명을 넘은 상태로 일본 전국적으로 보아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참고로 오키나와 인구는 우리나라 대전과 비슷하다).   그런데 한 가지 감사한 일은, 이런 상황에도 오키나와의 많은 교회들이 현장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워낙 교회 수도 크리스천 인구도 적어서 지금까지 교회에서 감염이 일어난 케이스가 없었다.   또한 대부분의 교회가 소수로 모이다 보니 감염에 대한 부담이 적은 것도 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아이노 교회에서도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소수 정예 멤버들이 모여 주중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하고 있다.   오랜 기간 현장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회들과 일본 대도시 교회들의 현실을 생각하며 아픈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못 하게 된 것들이 많지만, 잊을 뻔했던 ‘한 영혼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며 인내와 지혜를 겸손히 구하게 됩니다.   전세계 성도들이 코로나의 어려움 속에서 더욱 주님을 사모하고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하게 되는 이 때, 먼저 우리의 영을 정결하게 회복시키실 주님을 바라본다.   아이노 교회 주일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2학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나오던 친구가 6학년이 되면서 교내 농구부 동아리에 들어갔다. 염려는 현실이 되어 주일에 다른 학교와의 시합 때문에 예배에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혼자 교회에 오던 또 다른 친구도 배구부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못 오고 있다. 둘 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데 중학교에서 본격적인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믿음을 지켜 나갈지 애타는 마음이다.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주님 안에서 계속 자라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다.   10월 마지막 주일에 아이노 교회 창립 12주년 감사예배를 드린다. 깨어짐과 실수투성이의 시간들이었지만 저희는 참 행복한 주님의 동역자임을 고백하게 된다. 늘 신실하게 앞서 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과, 뒤에서 든든하게 기도해 주시는 동역자님들의 존재에 깊이 감사드린다. /곽한상·김세영 일본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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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사무차장 신동현목사
        “울란바토르의 도시빈민 문제는 기후문제와 연관 있다” 동아시아 강국들의 산업화가 몽골의 생태계 파괴 원인   (사)푸른아시아는 2002년 (사)시민정보미디어센터란 이름으로 설립되어 2008년 법인 명칭을 변경하고, 외교통상부에 사단법인과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했다. 이후 동 단체는 기후변화로 인해 몽골이 점진적으로 사막화되어 가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무차장 신동현목사(사진)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원래 50만명의 인구가 살 수 있도록 설계된 도시이지만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현재는 150만명이 이 지역에서 살고 있다”며, “70만명 이상의 사람들은 게르촌을 형성하여 과거 우리나라의 판자촌 주민들과 같이 빈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몽골의 도시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몽골은 러시아에 이어 2번째로 ‘사회주의혁명’을 성공하여 1990년대까지 사회주의정부가 계획경제를 기반으로 국가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유시장경제가 들어서면서 몽골의 가축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그 수가 6,000만에 이르게 되었다. 규제가 풀리자 자본가들은 유목민들에게 캐쉬미어펀드를 빌려주어 염소를 키우게 유도했고, 이에 많은 유목민들이 반응하여 대출을 받고 대량의 염소사육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몽골의 인구는 300만명인데 가축수가 6,000만을 넘는다. 하지만 이미 기후온난화로 인해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몽골에서 이정도 숫자의 가축을 사육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많은 유목민들이 염소사육에 실패해 전 재산을 탕진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수도인 울란바토르로 모여들어 게르 빈민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목사와 동 단체는 그들을 빈민이 아닌 기후환경난민이라 칭하며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유목민들이 정상적으로 가축을 키우기 어려운 상황이 되도록 몽골의 생태계가 파괴된 이유는 유목민들 자신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한 몽골 주위의 동아시아 강국들이 산업화되는 과정 속에 이미 몽골의 자연은 함께 파괴되었다. 더구나 초원이 사라지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없이 외부 자본가들은 유목민들을 돈으로 현혹했다. 그리고 대출받고 축산업에 실패한 유목민들에게 그들이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실패의 책임을 전가했다.   대도시의 기후난민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하고 있는 신목사는 “몽골인들에게 나무를 심는 것에 대해 교육을 하고, 그들이 유실수를 심어 과실판매를 통해 안정적인 수입처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과실을 가공품으로 만들기 위해 공장을 짓고 있다. 그리고 자유시장경제의 무한경쟁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조합 활동들에 대해 교육하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마을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목사는 동 단체가 단순히 나무만 심는 곳이 아닌 몽골의 지역사회에 사람들을 심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쉽지 않은 만큼 새롭게 건설한 산림과 공동체를 가꾸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일은 더욱 더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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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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